백제의 역사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패배한 자는 말이 없고 승리자는 자신의 승리를 크게 부풀리며 역사의 바퀴를 굴려나갔다. 스러져간 백제의 역사 안에서 찬란하게 꽃 피웠던 문화의 융성은 세계문화유산인 백제의 숨결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는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올 가을 여행지로 백제문화유적지구를 선택한 이유다.
문화의 힘을 실감하는 요즘, 역사 안에서 흥망성쇠가 반복되고 그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했다. 등재 지역은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2곳, 부여의 관북리 유적·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와 나성의 4곳, 그리고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2곳을 합친 8곳이다.
백제를 만나기 위한 첫 여행지는 공주다. 공주의 공산성 성곽길을 걸으며 백제로의 옛 여행을 시작한다. 백제는 부여족이 남하하여 한강유역에 살고 있던 마한과 주변 소국을 병합하여 만든 고대국가다. 나라의 이름처럼 ‘모든 백성이 즐겨 따랐다’라는 뜻의 백제는 특히 문화가 융성한 나라였다.
안타깝게도 백제의 첫 번째 도읍지인 위례성에 대한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도읍지인 웅진(공주의 옛 이름)에서의 백제시대는 64년간이었고 남아있는 백제시대 유적은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다. 남쪽에서 바라보면 왼쪽에는 공산성이 오른쪽에는 무령왕릉이 있다. 금강 줄기가 두 팔을 벌려 백제의 두 유적지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지정학적 위치를 십분 활용한 지혜의 산물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마 열차(공산성-송산리 고분군-공주 한옥마을, 국립공주박물관을 순환하는 버스) 세우는 곳을 지나면 공산성 입구인 금서루(錦西樓)가 나온다. 성에는 동, 서, 남, 북의 4개의 문이 있고 현재 주 출입구는 금서루 아래 약간 남쪽에 있다. 금서루에서 왼쪽 성곽길로 접어든다. 첫 번째 누각인 공북루까지 성곽이 높고 가파르다가 완만해지곤 다시 내리 꽂힐 듯이 낮아진다. 중간중간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웅장함을 과시하며 서있다. 입구인 서쪽에는 백호가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남쪽의 주작, 동쪽의 청룡, 북쪽의 현무로 깃발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성곽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공산정을 지나며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철교를 굽어본다. 공북루는 북쪽의 성문 위 누각이다. 예전에는 남쪽의 진남루가 주 출입구였고 성안마을을 가로질러 공북루에서 금강을 건너 한양을 드나들었다. 공북루 근처에는 1920년대 공주 사람들의 중요 교통로였던 배를 엮어 만든 배다리 흔적이 남아있다.
급히 내려왔으니 다시 급히 올라가는 오르막이다. 오르막에 올라서니 저 아래 만하루와 연지, 영은사가 보인다. 연지는 물을 가두어두었던 곳, 영은사에서 연지까지 작은 길이 숨겨져 있다. 암문이다. 전쟁이 났을 때 이 길을 통해 위급 상황을 알리거나 구원을 청했던 비밀 문이다.
산을 따라 지어진 산성답게 오르내림에 따라 나타나는 풍경이 다채롭고 성곽 안쪽으로 들어가면 숲길의 고즈넉함이 있다. 임류각과 동쪽 관문인 영동루를 지나면 공산성의 주문이었던 진남루가 나온다. 2.2km 둘레를 따라 걷는 시간은 넉넉잡고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성 둘레는 대부분 돌로 쌓여 있고 흙으로 된 구간은 약 390m이다. 이 구간이 백제의 성곽 축조 양식이 엿보이는 곳이다. 왕궁지로 추정되는 쌍수정 부근까지 둘러본 뒤 다시 금서루로 나오면 공산성 한 바퀴를 다 돌게 된다.
공산성 내 대부분의 건물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은 백제의 숨결 위에서 태동하였다.
공산성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특히 유유한 금강을 따라 단풍 고운 계절에 걷기 좋다. 올해에는 이른 가을에 방문하였지만 가을이 깊은 때의 공산성에 대한 잔상은 오래도록 걷고 또 걷고 싶은 길로 남아있다. 이제부터가 딱 공산성을 만나러 가기 좋은 계절이다. 세계자연유산의 역사적 가치 위에 가을이라는 색을 칠한 백제문화유적지, 공주 공산성이 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