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리본 황정희 Nov 08. 2021

떠나는 가을 아침 바다... 추암


지구촌 어느 곳이나 뜨는 태양이다. 오늘 아침을 맞을 곳은 추암이다. 파도가 짓 이겨대 깎여 나가고 바람에 시달려 더 날카로워진 촛대바위는 너른 바다 위, 추암을 알리는 이정표다.


추암은 해맞이가 아니더라도 자주 왔다. 10월이면 추암 촛대바위 주변에 피는 해국을 보기 위해서였다. 추암의 해국은 다른 해안에 피는 해국보다 더 사진을 풍성하게 채운다. 워낙 풍광이 근사하기 때문이다. 해국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동해바다와 촛대바위, 형제바위를 넣고 꽃을 찍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오곤 했다. 오늘은 해맞이에 집중하여 추암을 여행할 생각이다.



쨍한 차가움 뚫고 해를 기다리다

해 뜨는 시간은 7시쯤, 밤이 많이 길어졌다. 곧 겨울이다. 어제, 오늘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길 잘했다. 숙소를 나서서 추암해변으로 향하는 걸음이 가볍다. 여명부터 차근차근 해가 뜨는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일출 포인트로 바쁘게 간다. 서둘렀는데도 이미 몇 명의 사진가들이 삼각대를 세우고 촛대바위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촛대처럼 길쭉하게 튀어나온 바위는 바다 위 추암을 알리는 이정표다. 이 촛대에 불을 밝히면 추암해변이 다 환해질 것 같다. 우암 송시열이 왔다가 이 풍경에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였다는데 나 또한 여러 차례 이곳을 왔는 데도 여전히 감동이 짙다. 동해바다의 명물은 명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희망을 담기 위해 촛대바위 앞에서 해돋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촛대바위 주변은 기암괴석들이 넓게 퍼져있고 푸른 물 위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불쑥불쑥 제 모양을 자랑한다. 이런 바닷가 근사한 바위에는 어김없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 어부가 본부인이 있는데도 첩을 들였다. 한집에 부인이 둘이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서로를 시샘하였고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얼마나 그 둘 간의 싸움이 심했던지 하늘이 노할 정도였다. 어느 날 이 꼴을 보다 못한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더니 두 여인을 어딘가로 데려가 버렸다. 졸지에 부인 두 명을 잃고 홀로 남은 남자는 망부석처럼 서있다가 굳어 지금의 촛대바위가 되어버렸다 한다.'

본래는 세 개의 바위가 서있었다고 한다.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인 100년 전에 두 개의 바위가 벼락으로 부서져버렸단다. 셋이서 사이좋게 살았다는 억지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나름 개연성을 찾는 노력을 한다. 홀로 남은 촛대 바위에 '그러니 있을 때 있을 때 잘하지, 왜 그랬니?'라는 물음은 파도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촛대바위 위 갈매기와 함께 오랫동안

해 뜨는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아! 안타깝게도 동쪽 바다에 구름층이 두껍다. 온전히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구름 너머 세상은 해의 권역에 든 듯하다. 구름이 가리었어도 시야가 점차 밝아진다.  

이때의 감각이 좋다. 태양의 붉은빛이 세상 만물에 스며들어 찰나적으로 온 세상이 붉어지는 순간, 오감은 찌릿한 자극을 받는다. 붉은빛을 머금다 토해내듯 본래의 색을 찾는다. 해가 구름 위로 훌렁 떠올라버린다. 그러고 나면 바글바글했던 사람들이 흩어진다. 그때부터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빛이 비쳐 드는 각도가 시시각각 변하고 파도는 빛과 맞잡고 왈츠를 춘다. 촛대바위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턱 자리를 잡는다. 털을 고르기도 하고 해를 바라보다 날개를 폈다 접는다. 한참을 그렇게 촛대바위 위 갈매기와 함께 아침 해를 즐긴다.  



추암해변 마스코트, 오리와 거위 가족

형제바위 쪽으로 내려와서 추암 해변으로 향한다. 햇살이 파도를 보석 알갱이처럼 반짝거리게 비춘다. 해변에서 한참 파도를 바라보다 나오는데 오리와 거위가 다리 아래 물가에서 꽥꽥거린다.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오리들과 함께 놀고 있다. 아이가 새우깡을 던지면 오리들이 우르르 달려들고 아이는 도망가느라 바쁘다. 뒤돌아 새우깡을 던지고는 또 도망가고.... 오리들은 꽥꽥 거리며 졸졸졸 따라다닌다. 먹이 주는 사람을 놓칠 수는 없다는 비장하기까지 추격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출렁다리 아래 부서지는 파도와 쪽빛 물색

추암촛대바위 해안에서 미적거리다 9시가 되어서야 출렁다리로 향한다.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정해져 있다. 너무 춥다 싶으면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동해의 아침을 즐겨도 좋다. 출렁다리는 길이 72m, 폭 2.5m로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크게 출렁거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흔들리긴 한다. 다리를 건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파도와 포말이 발아래에서 요동쳐 긴장감을 일으킨다. 비취색의  짙고 옅음이 바다라는 도화지 위에 뿌려진다.


추암은 어느 계절에 와도 좋은 곳이지만 가을과 겨울에 특히 가슴을 시원하게 때려준다. 이왕 추암을 목적지로 택하였다면 서둘러서 해가 뜨기 전에 촛대바위 앞에 도착하도록 한다. 어스름에서부터 점차 밝아지는 하늘, 결국에는 세상이 밝게 열리는 순간, 희망이 가슴을 붉게 물들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이 술을 부른다, 포천 전통술박물관 산사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