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여행
섬은 외로움과 고난을 딛고 선다. 단절과 고독이 밀려오는 섬의 바닷가 절벽 위에 서니 가없이 깊어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모진 해풍에도 의연하게 핀 꽃 한 송이가 그리 귀해 보일 수가 없다.
섬은 최소한 1박 이상을 해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정상 무박2일이라는 여행을 떠났다. 밤 11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저구항에 도착해 8시 30분에 출발하는 첫배를 기다린다. 소매물도로 들어가는 배는 통영과 저구항 두 곳에 있다. 통영에서는 1시간 10분여 걸리는데 반해 거제 저구항에서는 30분이면 소매물도에 도착한다.
섬은 그리 크지 않다. 섬 둘레가 5.5km 정도, 두세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소매물도의 첫손 꼽히는 비경은 남쪽의 등대섬이다. 쿠크다스 CF를 찍었던 곳이라 일명 쿠크다스섬이라고 불린다. 몽돌해변이 본섬과 등대섬을 연결하고 있는데 물때가 맞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길이 열린다고 한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발걸음을 재촉한다.
몇 가구 되지 않은 마을이 자리 잡은 가파른 산기슭을 올라 등대섬으로 가기 위해 능선을 오른다. 남구절초, 개쑥부쟁이, 해국, 긴꽃며느리밥풀, 갯고들빼기... 가을꽃들이 꽃마중이다. 특히 긴꽃며느리밥풀꽃은 소매물도와 통영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다. 유난히 꽃부리가 길어서 붙은 이름이다.
정상을 지나니 서서히 등대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손에 잡힐 듯한 가을바람과 파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두 섬을 잇는 몽돌해변에 이르렀다. 세월이라는 파도에 의해 모가 사라진 바위와 돌들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낸다.
해안을 지나 다시 오른다. 드디어 하얀 등대가 서있는 섬의 정상에 선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장엄하다. 그런 절벽 위 흙 한줌 되지 않은 바위덩이위에 노란색 갯고들빼기가 피어있다. 이 여리디 여린 꽃 한 송이조차도 거친 자연과 싸우며 척박함을 이기고 살아가고 있다.
길이 닫히기 전에 등대섬을 나오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뚝뚝 떨어진다. 몽돌해변의 자그락거리는 물소리는 새벽녘 이곳에 왔을 때의 기분을 상상하게 하고 소매물도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던 밤을 기억한다는 이의 말처럼 나도 밤을 섬에서 보내면 좋으련만... 그것은 훗날을 기약해야겠다.
저구항으로 출발하는 마지막 배는 오후 4시 15분이다. 갈매기들과 놀다보니 어느새 저구항이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출발하려고 한다. 항구를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짧았던 섬여행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