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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Dec 04. 2019

친구들 덕분에 행복하다

공감과 갸웃 사이, 그래도 좋다.

10년이 훌쩍 넘은 후에야 젊은 날의 친구들을 만났다. 사람마다 사연 없은 이 없을 테고 나도 그런 사연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다들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잘 못살았던 것 같은 나는 끝없이 숨어 들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를 찾았나보다.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 50대에도 하냐고? 하는 사람 꽤 많고 나도 한다. 한 대학 친구를 페이스북에서 만났고 결국에는 SNS를 하지 않는 친했던 친구들과도 닿았다.


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나름 블로그에 여행 꽤 다니는 척 하고, 페이스북에 사진 올리고, 인스타그램은 조금 한다. 인스타그램이 젊은이들의 놀이터라는 이야기에 지레 주춤한거다. 그나마 블로그는 숙제장처럼 이용하고 내 속 이야기는 여기 브런치에 털어놓고 있다. 


세상사 살아보니 인상 찌뿌리면 주름살만 생기고, 그래도 괜찮아라고 되뇌이면 그럭저럭 괜찮아지더라. 그렇게 분명히 괜찮은 것은 아닌데 괜찮다고 위로하며 하루를 보내던 올해 봄이었다. 10여년 만에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제주의 왕이메오름 분화구 안에서 빛에 따라 달라지는 변산바람꽃에 감탄하던 순간이다. 거의 바닥에 배를 깔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을 놓고 있던 그 타이밍이다.  꽃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세상에 심취해 찍고 있는데 현실의 세상인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받았다. 해질녘 빛이 너무도 소중하여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에 보통은 무시하고 사진을 찍은데 왜 인지 받고 싶었다.


10여년 만에 만나는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먹먹해졌다. 그리도 못 잊었던 벗이다.



친구를 만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사랑만이 세상을 빠꾼다고 우정도 만만치 않다. 그 이후로 꽤 행복하다. 서로  달리 산 세월이 긴 탓에 이건 아니다 싶다가도 그네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진심을 마주하면 뭐 까짓거 이정도야 수용가능하다는 마음이 든다.


한 친구가 한 좋은 이야기는 마음에 적어둔다.  총량의 법칙이 있어 아픔을 충분히 겪었으면 그 다음은 기쁨이 따라온단다. 사람마다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정해져있다는.


삶에서 진실로 나를 생각해주는 벗을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그 시기는 젊을 때, 또는 어릴 때이다. 세상에 때묻지 않은 그 시기에는 사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상대 또한 진심을 다한다. 젊은이들에게 말한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마음의 벗을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벗이 마음의 위로가 될 순간이 올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진심을 다해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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