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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Apr 20. 2020

마음에 햇살 쬐기, 성산포와 그 바닷가를 거닐다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 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집을 가지고 가라 한다.    


‘아침 여섯 시 어느 동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이생진 시인의 시집을 들고 볼가를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벗 삼아 마음의 고향을 찾듯 성산포로 간다.    


성산포는 제주를 수 십 차례 오고 가면서도 꿈에서 그린 곳인 양 찾고 또 찾는 나만의 바닷가이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드라마틱한 자연의 변화를 그림처럼 펼쳐 보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가면 지친 상념이 가라앉고 마음에 위안이 찾아오는 때문이다. 유난히 현실이 버겁다 싶은 때에면 해안가 어드메에 앉아서 몇 시간을 머물다 온다. 바쁜 일정에 짧은 시간밖에 머물 수 없어도 짬을 내어 들러보아야 저도 모르게 쌓여있던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성산일출봉은 바닷가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수성화산이다. 이름자에 붙은 것처럼 일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보통은 바닷가에서 성산일출봉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족하다 싶지만 한번쯤이라도 정상에 올라 99개의 거대한 기암을 호위병처럼 거느린 동쪽 끝 태양이 떠오르는 자연이 만든 성의 모습을 보아야 하리라. 기기묘묘한 거석들과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 빙 둘러 천연 요새를 짓고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 아래 태양과 바다 그리고 제주의 모체인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이나 오르는 시각에 따라 오르는 맛이 확연히 다르니 두세번 올라도 좋겠지만 반드시 한번은 새벽잠을 깨워 해맞이를 해보기를 권한다.   


성산포를 온전히 느끼고 그곳에서 위안을 얻고자 한다면 해안을 따라 느릿하게 걸으며 발자국을 남겨보자. 시작점은 이생진 시비거리다. 성산일출봉의 뒷 부분이 반쯤 드러나보이는 ‘시의 바다’에 멈춰서서 이생진 님의 시를 읽는다. 성산포를 유난히 사랑하는 시인, 이생진은 1978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펴냈다. 성산의 해와 바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였던 시인이 그려놓은 시의 길을 따라 봄날을 걷는다. 가을에는 갯쑥부쟁이와 해국이 해안절벽을 따라 피어 장관을 이룬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는 잔디밭 길은 15년 전에는 참 한적한 곳이었다. 지금은 올레를 걷는 이나 성산일출봉의 새로운 모습을 보려는 이들로 꽤 북적거린다. 그래도 여전히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초입보다는 찾는 이가 적어 유유히 걷는 맛이 있다.      


성산일출봉 입구에서 수마포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광치기로 걸어간다. 광치기해안은 원래 터진목이었다. 파도가 실어 나른 모래가 쌓이고 쌓여 육지와 가까워졌고 거기에 인간이 힘을 더해 이어지게 되었다. 광치기해안에서 바라보면 성산일출봉의 자태가 유난히 미끈하다. 마음이 유난히 울적할 때면 파도가 거센 광치기해안에 서보라. 광치기해안은 물때를 잘 맞춰서 썰물일 때 가는 것이 좋다. 물이 빠져 바다가 숨겨놓은 푸르른 암반지대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때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든다. 숲 속 바위에 내려앉은 초록 이끼와 닮은 바다이끼가 돌빌레를 빼곡하게 덮고 있다. 바닥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물빛과 어우러져 가슴에 푸른 동심원을 그리듯 희망을 전한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은 파도를 어루만지고... 수평선 너머를 응시하는 여행자의 상념은 파도를 따라 밀려오고 밀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수 천 년이 켜켜이 쌓인 해안에 서면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서있다.     


광치기해안이 끝나면 섭지코지가 시작된다. 섭지코지는 좁은 땅 이란 뜻을 지닌 ‘섭지’와 바닷가에 불쑥 튀어나온 땅(곶)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인 ‘코지’가 합쳐진 지역명이다. 낮은 풀로 뒤덮인 나지막한 오름 자락에서 풀을 뜯는 말들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출렁이는 파도를 이불 삼아 성산일출봉이 누워있다. 길은 두 개로 갈리는데 왼쪽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초입에 있는 지역 해녀들이 운영하는 섭지해녀의 집은 깅이죽, 전복죽, 성게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이다. 작은 게를 갈아 넣어 끓인 깅이죽이 별미다. 해녀의집에서 나와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불을 피우며 쉬던 불턱이 보인다. 해녀들은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물에 들어가야 했다. 수 시간을 바다에서 물질하다 이곳에 올라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서로의 시린 등을 어루만졌다. 불턱은 해녀들의 쉼터다.


굽이치는 해안선을 따라 파도가 부딪치는 길을 걷는다. 유독 이곳의 파도가 거세게 느껴진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기암괴석과 등대가 있는 섭지코지의 진짜 코지가 나타난다. 계단을 타박타박 올라 등대를 마주한다. 어느 곳을 가나 등대가 서있는 곳은 최고의 전망대이다. 등대 가까이에 서서 섭지코지의 매력을 한눈에 담는다. 섭지코지 방향으로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였던 올인하우스가 보인다. 건물이 있어 분위기를 방해하는 느낌도 있지만 시커먼 바위 절벽 위의 데크를 따라 걷는 길이 이국적이다. 성산일출봉이 시야에 사라질 듯한 지점에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이생진시비거리에서 시작한 성산포 걷기가 섭지코지 언덕에서 끝을 맺었다. 서 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성산일출봉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떠올렸던 성산일출봉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언덕과 모래사장을 걸으며 바다에 취했고 이생진 시인의 시구를 떠올려 보라. 잠깐 다녀가는 여행자가 아닌 성산일출봉과 동행이 되어 답답한 봄날에 위안을 얻을 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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