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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May 01. 2020

태백산의 봄꽃 향기-한계령풀

산을 오르다 보면 누군가 꼭 외치는 말이 있다. “이렇게 힘든데 왜 산에 올라가는 거야” 그러면 어떤 이가 받아친다. “내려가려고 올라 간다더라” 산을 오르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질문이 무의미하다. 어쩌다가 산을 오르는 사람들, 또는 산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다시 내려올 산을 왜 가냐며 쓸데없는 짓이라며 혀를 찬다. 그들에게 산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하면 그 반응이 어떨까 궁금하다. 산은 실제로 보물을 숨기고 있다. 풀과 나무는 철따라 고운 꽃을 머금었다가 피우고 산골짝 작은 옹달샘에서 시작된 계곡물은 강으로 흐른다. 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보물 같은 풍경이다. 산행을 통해 건강을 약속하는 것도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빠르게 올라 부리나케 내려가는 것에 급급한 산행은 강도 높은 운동일 뿐이다. 산은 정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는 벗이다. 산이 숨겨놓은 보물을 만나기 위해 봄날의 태백산을 오른다.    

   

태백산은 높이 1.567m로 영산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최고봉은 장군봉, 산정 부근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다. 천제단 주변 주목에 핀 눈꽃과 일출을 테마로 한 사진은 큼지막한 달력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봄날의 산행에선 눈꽃도 일출도 없다. 그런데도 충분히 환상적이다. 언 땅을 헤치고 화들짝 피어나는 꽃들, 꽁꽁 얼었던 계곡이 녹아내리며 쏟아내는 맑은 물소리, 앙상한 가지에 꼬물꼬물 돋아나는 연둣빛 새잎들......... 4월 태백산은 겨우내 숨겨놓았던 보물을 일제히 밖으로 꺼내 놓는다. 시기는 4월 중순 이후가 좋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천제단을 지나 정상인 장군봉을 넘어 망경사에서 당골로 내려오는 것이 태백산의 봄꽃을 마중하기에 최적의 코스이다.    

  

거리는 약 9k 정도, 보통 산행시간은 4시간~4시간 30분을 잡지만 한두 시간 여유를 부려 충분히 봄이 물드는 산을 느껴보자. 유일사 입구는 홀아비바람꽃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피어 흰색의 꽃방석을 만든다. 큰괭이밥, 선괭이눈이 언뜻언뜻 보이고 능선에 가까이 가면 청색의 갈퀴현호색과 노란색 한계령풀이 한 사면을 덮는 장관이 펼쳐진다. 보랏빛 얼레지도 군데군데 피어 색채의 향연을 벌인다. 한참을 머물다 능선에 올라서면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흠칫한다. 아직은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바람은 장군봉 정상에서 당골 방향으로 내려오면 잦아든다. 그 즈음 망경사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허기를 채우고 꽤 너른 흙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얼레지, 태백바람꽃을 눈 맞춤하면서 내려오다 피나물이 융단처럼 깔린 산자락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황금색 꽃에 피나물이라고 불린다. 피나물은 줄기를 자르면 피와 같은 붉은 유액이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어디선가 맑은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태백산의 계곡물은 유난히 청아하다. 계곡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 좌측은 당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문수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시원한 물소리 벗 삼아 잘 다듬어진 길을 걸어내려간다. 양옆에 애기괭이밥이 빼곡하게 피어있다. 햇살이 약해지는 오후면 꽃잎을 살며시 닫는다. 강원도 산의 봄은 늦으면서도 짧다. 4월, 봄꽃 잔치는 한순간처럼 짧게 지나갈 터이다. 짧은 봄에 나의 한숨을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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