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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May 28. 2020

초록 물이 듬뿍 오른 비밀의 정원, 창덕궁 후원

서울 탐방

   

애련지 구역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보내고 있는 가장 젊은 날의 봄이 아쉽다. 연두색 새잎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5월을 느끼기 좋은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 창덕궁 후원이 떠올랐다. 가을에는 몇 번이나 가보았으나 5월은 처음이다. 전각과 궁궐 후원의 풀과 나무가 생기를 잔뜩 머금은 길을 걸으며 봄이 코밑까지 왔음을 느낀다.    

창덕궁은 조선 초기에 지어졌다. 제 형제의 피를 묻혀 왕위에 오른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은 그 현장인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다. 1404년에 새로운 궁을 짓도록 하였고 이듬해에 창덕궁이 만들어졌다.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으나 조선의 역사 속에서 종종 법궁(法宮)의 역할을 한 곳으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돈화문과 회화나무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하면 수 백 년의 세월을 겪으면서 거목으로 자란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위풍당당하다. 마른 줄기 끝에 새잎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흰색 꽃을 활짝 피운 백당나무를 지나쳐 금천교를 건너 좌측으로 접어들면 정전인 인정전이다. 그 뒤로 편전이었던 선정전, 왕의 침전이었다가 편전으로 사용한 희정당과 대조전이 있다. 왕과 왕비의 침실이자 왕자와 공주를 교육하였던 대조전은 조선 멸망을 지켜본 비운의 전각이다. 한국을 일본에 넘긴다는 조약이 체결된 곳이자 ‘창덕궁 전하’라 불리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승하한 곳이다. 전각들은 대부분 촘촘하게 붙어있어 둘러보기가 수월하며 사대부 양식의 건물인 낙선재만 주 전각들과 떨어져 있어 약간의 발품이 필요하다.

대조전

이에 반해 후원은 꽤 많이 걸어야 둘러볼 수 있다. 양옆에 긴 담벼락을 끼고 있는 길이 비밀의 정원으로 이끈다. 대 여섯 살 정도 된 아이들과 함께 고궁 나들이에 나선 가족이 앞서 걷다가 감탄사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구부러진 길 끝에 초록의 터널이 펼쳐져 싱그러움이 치열할 정도다. 왕실 정원을 대표하는 후원에는 오래된 고목이 가득하다. 뽕나무, 은행나무, 쪽동백나무, 함박꽃나무, 느티나무... 나뭇잎을 한데 모아 꾹 짜면 연두와 녹색이 절묘하게 섞인 5월의 색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 쪽동백나무와 함박꽃나무는 이미 꽃이 피었고 곧 때죽나무가 작은 종 모양의 꽃을 가득 매달 것이다.   

숲길의 끝자락에 부용지가 보인다. 사각의 연못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는 영화당이 남쪽과 북쪽에 부용정과 주합루가 서있다. 계단식 구조물 위에 서있는 2층 누각 형태의 주합루는 정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만들어져 1층에는 도서관격인 규장각이 있고 2층은 학자들의 배움터이자 토론장으로 애용되었다. 

부용정

부용지를 나와 숙종 때 만들어진 애련지, 간소한 정원과 조선시대 양반가옥을 본떠 만든 연경당을 둘러보고 초록 샤워의 오솔길을 걸어 왕의 휴식공간이었던 존덕정에 이르러 발길을 멈춘다. 숨겨진 작은 숲길 아래에 인공적으로 물길을 낸 옥류천이 절묘하게 숨어있다.  

   

옥류천 구역
청화정

5월의 창덕궁은 어느 곳 하나 싱그럽지 않은 곳이 없다. 초록이 꽃처럼 피어나 앞에서 끌고 뒷자락을 물들인다. 궁궐의 오솔길을 따라 타박타박 걷다 숨어 있는 숨바꼭질 동무를 발견하듯 찾아낸 연못과 정자에서의 느린 휴식이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연경당
존덕정 구역

창덕궁의 전각은 휴관일(매주 월요일)을 제외하면 상시 관람이 가능하지만 후원은 궁궐 전각 관람료(대인 3,000원)와는 별도의 후원 관람료(대인 5,000원)를 내고 들어간다. 후원 관람에는 대략 90분 정도 소요되며 해설사와 함께 회차 별로 100명만 입장하도록 하고 있다. 예약 50명, 당일 발권 50명이다. 예약은 6일 전 오전 10시부터 입장 전날까지 받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해설사 없이 회차 별로 입장하여 자유 관람을 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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