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르포] 시각장애인이 만든 커피, 마음까지
[장애인인식개선칼럼] 최봉혁 칼럼니스트
커피 향이 풍기는 카페 한구석. 눈을 감고 바리스타의 손길을 따라가 본다. 손끝에서 커피가 완성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름'을 넘어 '같음'을 마주한다.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되돌아본다.
[편집자주]
“당신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듭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 에스프레소 머신이 규칙적인 소리를 낸다. 한 청년이 주문에 맞춰 원두를 갈고 우유를 스팀한다. 커피를 내리는 그의 손길은 섬세하고 익숙하다. 그의 눈은 어둡지만, 마음은 따뜻하게 빛난다. 이곳은 시각장애인 바리스타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모아(cafemore)다.
카페모아에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일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오랜 시간 바리스타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키웠다. 외부인이 보기엔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만큼 능숙하다.
매장 한쪽에는 눈길을 끄는 안내판이 있다. ‘시각장애인이 바라본 커피의 모습’이라는 제목 아래, 백내장·황반변성·당뇨망막병증 등 시각장애 유형별 시야 체험 이미지가 붙어 있다. 고객은 그 안내판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가 보는 세상을 커피를 통해 나누고 싶었어요.”
바리스타의 말에는 이 공간이 단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님을 보여준다. 장애인의 노동이 존중받고, 편견 없이 만날 수 있는 현장이다.
카페모아의 구성은 독특하다. 매장 운영과 고객 응대는 바리스타가, 계산과 안전 관리는 매니저가 맡는다. 손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목소리와 향기로 소통한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커피지만, 우리에겐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에요.”
국내 시각장애인 등록 수는 25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걸음이 더디다. 많은 사람이 시각장애를 '완전한 어둠'으로 오해하고, 능력보다는 한계를 먼저 본다.
카페모아는 그 고정관념을 깨는 교육의 현장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누구든 일할 수 있고, 누구든 동등하게 설 수 있음을 말 없이 증명하는 공간이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법으로 정해진 의무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커피는, 그보다 더 깊고 진한 가르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