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는 ‘덕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친구들이 물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뭐든 실용적인 것.”이라고 대답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공부하기 싫을 때 멍하니 바라보는 것밖에는 아무 쓸모없는 도자기 장식품을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대답하는 소녀소녀 한 친구들이 나는 이해가 안 갔다. 강아지 모양 도자기로 뭘 하려고? 하다못해 강아지 머리통으로 마늘이라도 빻을 수 있어야 할 거 아냐? 나의 단호한 취향에 당황한 친구들은 내 생일 선물을 무엇으로 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 친구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렌즈 세척용 식염수는 어때?”
그렇게 나는 렌즈 세척용 식염수를 생일 선물로 받은 유일무이한 여고생일 될 뻔했으나 너무 낭만이 없다는 이유로 그 의견은 다른 친구들의 비난 속에 흐지부지 사라졌다.
덕질과 덕후 양성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다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그나마 조금 빠졌던 게 있었다면, 당시 여고생이라면 누구든 빠져야만 했던, 빠지지 않으면 배신자 취급을 받았던, ‘H.O.T’였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덕질에 전율을 느끼며 ‘별이 빛나는 밤에’에 사연을 써 보내고, 다이어리도 공책도 스티커도 온통 그들의 사진으로 도배를 했다. 황금 같은 저녁 쉬는 시간에 외출증을 끊어서 새로 나온 그들의 사진을 사러 가기도 했다. (요즘처럼 인터넷만 뒤지면 사진을 100장이고 1000장이고 볼 수 있는 시대의 팬들은 새로운 사진이 나온 날의 그 설렘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갈망이 어지럽게 막춤을 춰 대는 사이에서도 다리를 꼬고 도도하게 앉아있던 나의 ‘이성’은 어느 순간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친구들이 ‘우리의 오빠들’을 도와주자며 앨범을 두 개씩 사자고 했을 때다. 왜? 앨범을 두 개 사서 양쪽 귀에 하나씩 꽂고 들으려고? 내가 볼 땐 우리 오빠들은 이미 돈은 벌만큼 벌었을 것 같은데? 그런다고 우리의 오빠들이 우리를 알아주기라도 하겠어?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실제로 이런 애늙은이 같은 발언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험을 하루 앞두고 친구가 오빠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터뜨렸을 때 다시 한번 내 이성은 절레절레
도리를 저었다. 왜 우냐는 질문에 친구는 오빠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다가갈 수 없는 현실 사이의 혼란에 대해 두서없이 얘기했고, 나도 두서없이 친구를 위로하며 나 역시 그렇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 좋아한다고 그가 나를 사귀어 줄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것조차 모를 텐데 감정이 저렇게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덕질을 하던 와중에도 나는 완전한 덕후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덕질인 듯 덕질 아닌 덕질 같은 덕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무 자르듯 끝나버렸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나의 '실용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한층 더 심해졌다. 대학교 동아리도 조금이라도 취업에 도움이 되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실용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에만 관심이 갔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입을 수 있거나 먹을 수 있거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에만 지갑이 열렸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필요가 없는 것에는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우리 집은 나름 유복한 편이라 부모님이 갖고 싶은 건 늘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이상하게 나의 실용성에 대한 집착은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의 그런 이상한 집착은 돈을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시간을 사용하는데도 똑같이 적용이 되어,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거나 직업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취미 생활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취미 생활은 ‘영어회화’와 ‘독서’처럼 소개팅에 나갔을 때 상대방의 흥미를 조금도 끌지 못할 만한 것들로 채워졌다.
언젠가 회사 선배가 재미로 내 별자리 점을 쳤는데, 정확한 용어는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지구 적합 인간’이라는 뜻의 결과가 나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생활력이 너무 넘쳐나서 무인도에 떨어져도 돈을 벌어먹고 살 만큼 지구에 살기 적합한 성격이라는 뜻이었다. 우주적 성격을 지닌 사람이 생활에 하등 쓸모없는 일들로 공상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이 경쟁뿐인 삭막한 지구에 적응하지 못해 눈물 젖은 한숨을 내쉴 때, 나는 그런 인간들을 한심한 눈으로 흘겨보며 척박한 흙을 일구고 나무를 심고, 뭐든 생산해 내 운명적으로 이 지구의 효율을 올라가게 할 성격이었다.
선배는 당시 남자 친구도 없었던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저 아까운 걸 엄한 데 보내면 안 되는데... 내 주변 아는 사람한테 시집보내서 쪽쪽 빨아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30대 중반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계약한 회사에서는 매번 일이 잘 안 풀리고, 남들은 잘만 하는 결혼이 내 인생에서는 액셀은 없고 브레이크만 있는 차처럼 덜컹대던 어느 날.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책 한 줄도 눈에 안 들어오고 누워만 있고 싶었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그 영상을 만나고야 말았다. 당시 아이유를 타고 유행하기 시작하던 슬라임 영상.
화면은 온통 흐물거리는 액체 속에 들어간 각종 구슬들과 스팽글들이 반사하는 영롱한 빛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화면 끝에서 쫙 펴진 섬섬옥수가 천천히 다가와 그 빛 사이로 손가락을 가차 없이 쑤셔 넣었다. 투명한 액체 속으로 들어간 손가락 사이로 각종 구슬들과 스팽글들이 기포를 토해내며 환상적인 폭죽을 터트렸다. 그 황홀함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을 뻔 한 순간, 손가락들은 그 사이를 재빠르게 빠져나와 물처럼 투명한 그 액체를 양손에 들고, 늘였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슬라임의 주인이 얼마나 그 안에 많은 구슬들을 색색별로 신경 써서 넣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눈을 부릅떴다. 심장이 뛰었다. 영상을 무한으로 반복해서 보았다. 나는 물처럼 투명한 저것을 손으로 들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치였고, 그것이 뽁뽁이 포장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환상적인 귀르가즘을 선사한다는 사실에 두 번 치였고, 그 안에 들어있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에 K.O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