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연재]우울하면 좀 어때

3.남의 눈빛 하나에도 우울해지는 의대생

by 문학세계사


3.남의 눈빛 하나에도 우울해지는 의대생



김승기(시인, 김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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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에 다니는 D 군. 그는 수시로 우울감이 엄습해 온다. 모든 게 무의미하고 허무하여, 무력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무작정 거리를 걷거나, 버스나 기차를 타고 헤매다 일상으로 지쳐 돌아오곤 한다. 그리고 혼자서 자주 술을 심하게 마시곤 한다


T : 언제부터 그런 것 같아요?
P : 대학에 들어와서 시작되어 점점 심심해졌어요. 고등학교 때까진 집과 학교밖에 몰랐어요. 성적은 늘 좋아서 집이나 주위의 칭찬을 들었는데, 의대 들어오니 아니더라고요. 참 머리 좋은 친구들이 많아요. 나름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안 나와요. 열등감이 생기고 자신감을 잃어가며 남을 의식하는 것이 생긴 것 같아요.
T : 열등감이 생기고 자신감을 잃어가며 남을 의식하는 것이 생겼다고요?
P : 예, 같은 반 친구들이나 아니면 선배에게 말을 해 놓고 후회를 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요렇게 했어야 하는 것인데…’ 마음에 안 들게 한 말을 다시 지워버리려 머리를 흔들곤 해요. 그리고 상대방
의 태도와 표정 하나하나에 아주 민감해졌어요. 나에게 긍정적 반응인 것 같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면 금세 의기소침하고 우울해져요.
T : 상대의 반응에 따라 그러는 거네요.
P : 예, 그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젠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어, 물건을 사다가도 시장 아줌마 눈길 하나에도 그래요. 그러다 보니 우울감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요. 의대는 매일 시험인데, 집중이 안 되
고 너무 힘들어요. ‘이러다 낙제 당하지’ 싶어서 놀아도 도서관에서 놀아요. 그러다 아주 무기력해지면 다 귀찮아져서 떠나야 해요. 설령 다음날이 시험이라도…
T : 떠난다고요?
P : 밤차 타고 부산을 주로 많이 가요. 아침에 부산역에 떨어져요. 바다가 보고 싶어 태종대를 갔다가, 다음은 자갈치로 가서 시장을 돌아다니곤 해요. 한참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는구나!
나는 지금 무엇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다시 돌아오는 거에요. 올라오는 기차에서 허둥지둥 시험공부를 해요. 자주 떠나고 돌아오고,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떠날 때면 항상 거기에 꼭 누가 있
을 것 같아요. 막연한 그리움처럼.



D 학생의 대학 생활은 이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주기적으로 떠나야 했다. 어떤 때는 삶이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부모님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어, 자기가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친구관계는 늘 수동적이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하고만 그럭저럭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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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군은 전형적인 회피성 인격장애(Avoidant personality disorder)다. 회피성 인격장애는 거절에 대해 매우 예민하다. 누가 자신을 거절하는 눈치만 보여도 심리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위축되고 감정 변화가 심하다. 그래서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하고만 인간관계를 맺으려 하고, 남 앞에 서면 지나치게 긴장하는 사회불안(대인공포증)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거부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혼자 지내려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간절히 원한다.

D 군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오로지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그렇듯, 공부로만 내몰리고 여타 사회활동이 없어 대인관계에 아주 미숙하고 심리적 성숙이 부족하다. D 군은 오로지 공부 잘한다는 것 하나가 자존심을 유지하는 전부였는데, 그것에 문제가 생겼다. 지금 우리나라 의대는 가장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며 자기애(Narcissism)에 타격을 받아서 굳건하지 못한 미완의 자아 주체성이 흔들리며 혼란 상태에 빠진 것이다. 주체성의 상실 상태에서는 남의 평가에 휘둘리게 된다. 그래서 D 군은 남의 눈빛 하나에도, 꺼질 듯 흔들리는 촛불처럼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조금만 거절의 낌새만 있으면 바로 위축되고 무기력해지며 우울감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반추하며 자신을 자학하고 검열한다.

D 군이 떠날 때마다 거기 가면 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이는 회피적 성격 장애 때문인데 대인관계에서 위축되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만, 속마음은 늘 누구와 친밀관계를 원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누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일 것이다. 어쩌면 소심하고 수동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갖지 못하는 이상형의 이성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우리 병원을 찾으면서도, 부단히 떠나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과연 자신이 무사히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며 어렵게 대학을 다니고 있다. 언제쯤 그는 유쾌하며 자신있고 씩씩한 청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와 역동적 지지 면담을 시작했다. 면담 중에 본인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대인관계를 거절하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이것을 환자에게 누차 재확인(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직면, Confrontation이라 한다)시켰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내면이 분석되어 자신을 안다고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지, 현실의 비슷한 상황에 닥치면 또다시 같은 심리 상태로 계속 빠져들곤 했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문제는 이미 완성되었어야 할 주체성(Identity) 형성이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주체성, 즉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의 자기, 자기 내부의 일관된 동일성 유지,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고유의 소망 사고 기억 외모 등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 등이 그에겐 확고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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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XDBZXY, 출처 SHUTTERSTOCK


이는 비단 D 군의 문제만이 아니다. 아마도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렇지 않나 싶다. 우리 교육의 아주 큰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진짜 어른은 ‘남이 설령 틀렸다고 해도, 자신이 하고 싶으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대는 개성화 시대다. 똑같은 일을 했다고 해도 사람마다 평가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의 평가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령 한 번 실수했더라도 그 후 계속 잘하면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일순간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보고 판단한다.]


어쨌든 그는 면담이 지속되며 주위의 평가에 덜 민감해져 갔고, 우울감과 무력감에서 많이 벗어났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이 생겨갔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묻는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겠느냐고, 그러다 내 눈치를 보며 금세 그러는 자신을 반성한다. 그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타인의 눈에서 자유로워져 갔고, 비록 성적은 우수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 나갔다.
이렇게 방황하며 보낸 날들이 그로 하여금 심리 분야에 관심을 갖게 했고, 자신은 나와 같은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단다. 자신은 손재주가 없어 외과는 못하겠고, 남을 이해하고 들어 주는 것은 자신 있다고 한다.


처방전

이 세상에는 어차피 당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칭찬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요?
자기 장단에 춤을 추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당신에게 호의적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과 한세상 살아도
세상은 충분히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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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승기는 ‘휴지 빼주는 남자’로 불린다. 매일 병원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환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옆에 앉아 그들의 젖은 눈을 위해 티슈를 빼주곤 한다. 가끔 시를 쓰고,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술을 마신다.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2003년 시전문지 《리토피아》로 등단하여 시집 『어떤 우울감의 정체』 등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정신과 전문의 김승기 시인의 자존감 처방전'- 『우울하면 좀 어때』를 출간했다. 한국정신분석학회 정회원, 김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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