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을
안녕
난 오늘 머리를 잘랐어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끝이 마르고 푸석해진 머리가
너무 볼품없어 보였어
그렇듯 볼품없이 지나버린 한 해의 시간도 또한
바싹 마르고 버석거리며 자꾸 엉켜버리곤 했지
괜찮아, 그래서 잘라내기로 했으니
집에서 제일 잘 드는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갔어
브래이지어만 입은 상체를
끝을 모르고 자라던 머리칼들이 4/5는 가리고 있었어
얕은 비명이 나올 만큼 차가운 물을
무의식 중에 머리 위로 뿌리니, 온몸에 그 기다란 머리칼들이 덕지덕지 붙었어, 조금 끔찍해 보였지
거울로 비치는 얼굴 바로 옆, 왼쪽 머리칼을
한 움큼 쥐고 가위질을 했어
끝이 쇄골뼈 언저리를 조금 내려가는 길이야
정해놓진 않았는데, 이 정도 길이면 괜찮을 것 같아
또 한 일 년은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해
돌돌 말아 묶어놨던 머리는 푹 적시지 않아서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양쪽 길이는 썩 괜찮게 맞춘 것 같아
뒤쪽을 볼 수가 없어서 한참 씨름을 했어
20분 가까이 쳐들고 머리칼을 잡고 자르고 하던
양팔이 슬슬 아파오고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손거울로 비스듬히 보이는 뒷모습이
이상하게 원하는 대로 잘리지를 않는 거야
적셨던 머리칼들은 벌써 물기가 말라가고
온몸, 하얀 화장실 바닥 위로
다듬고 다듬던 잔 머리칼들이 거멓게 흩뿌려져서
엉망진창이 되었는데도,
결국 뒷머리는 제대로 마무리를 할 수 없었지
그래서, 눈물이 나버렸나
견딜 수 없이 서러운 마음이 불쑥 들어버려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어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려 잘라내는 수밖에 없던 머리칼도,
내 마음처럼 제대로 잘리지 않는 뒷머리도,
미용실에 가지 못하고 혼자 낑낑거리고 있던 내 모습도
다 그냥, 답답하고 서러웠나 봐
그래도 괜찮아, 실컷 울었고, 모두 잘라냈으니까
다 괜찮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