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일년구월스물한번째날
새벽의 고요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이 어둠 속에서는
이 침묵 속에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다.
요즘은 새벽이 되면 잠을 잔다.
아침을 맞이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허울 좋은 변명은
그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여서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밤이 찾아오고, 어둠이 짙어지고, 소음이 잦아들면
자는 일이 마땅한 일인 양
좋아하는 팟 캐스트의 조용한 음성을 켜 두고
스탠드 하나 켜지 않은 까만 방 속에서 웅크리고 잠에 들 준비를 한다.
볼품없는 현실에 안위해버린 난
그것에 만족까지도 해버렸고
이대로도 좋지 않은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좋지 않은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라 믿는다.
그런데 자꾸 마음 한 구석이 곪는다.
비가 그쳐 차갑게 식은 까만 공기를 오랜만에 맡고 있으려니
어디에선가 머금고 있던 빗물들이 똑,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밤의 고요 속에 불어나
텅, 텅, 큰 소리로 심장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