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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e Nov 16. 2022

좋으니까 다 좋은

떨림의 농도


일주일 7일 중, 주말과 평일 하루 포함, 3,4일가량을 함께 지내다 보면, 생각보다 사소한 부분들에서 우린 서로 참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그리곤 얼마 못 지나 또 서로 참 잘 맞는다고도 느낀다. 타인이던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 은, 이렇게 조금씩 다른 부분들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같은 것들에 의미부여를 하며 거리를 좁혀가는 일이구나 싶다. 그렇게 서로 착 달라붙어 다른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게 꼼꼼히 메워 나가는 일이라고.


그 숱한 다름과 같음 사이에 겁쟁이인 내가 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사람은 내 공포의 대상 1위인 곤충을 보고 놀라는 일은 물론 없거니와, 모기 같은 해충이 아닌 이상은 결코 죽이지 않는다.

늦여름 저녁 산책길에 내 팔 위로 어디에선가 뛰어 올라온 귀뚜라미에 경악을 하며 온몸을 휘저었다. ‘허헛’ 너털웃음을 짓고, 가만히 있으라며 나를 달래곤,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던 팔 위의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길 옆의 화단으로 풀어준 그가 말을 잇는다.

- 괜찮아. 네가 쟤보다 훨씬 커. 쟤가 널 무서워할 거야.

나도 모르게 징징거리는 소리를 냈는데, 그 뒤에 저런 소릴 해서 울컥, 얄밉다. 그런데 또, 그래, 그 작디작은 곤충을 고이 데려다 풀어주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돌아서는 그를 꼭 끌어안고 당신이 너무 좋다고 고백해버린다.


서운함 따윌 느낄 새는 없다. 그럴 새를 잘 만들지 않는 그의 다정함 때문인 것도 맞고, 그의 좋은 점도 그렇지 못한 점도 전부 좋은 나 때문인 것도 맞다. 그렇지만 확실히 이 사람 뭐지, 싶을 때는 잦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를테면 내가 조금 싫은 티를 내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했을 때 라든가, 눈앞에 벌어진 일 혹은 유머에 대한 반응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그대로다. 감정의 공유가 연애의 9할이라 믿는 나는, 그때마다 그를 새롭게 사랑하기 시작한다. 여태는 모르고 있던 그의 새로운 어떤 면모가 또다시 내가 그를 사랑할 이유가 된다. 억지로 맞추려고 되는 게 아니니 왠지 모를 특별함도 더해지나 보다. 어제는 그래서, 오늘은 이래서, 사랑할 이유가 자꾸만 생기고 또 생긴다. 정말 이 사람은 뭘까.


야트막한 동네 산으로 산책을 이어가다 중턱쯤에 있는 운동기구들이 있는 공원 옆을 지났다. 그 사람은 호기심이 많아 숲 속 깊은 곳이나, 어두워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곳들을 보면 늘 슬금슬금 다가가서 발을 들인다. 그런데 겁도 없이 겁이 너무 많은 내 손을 붙잡은 채로 가로등 하나 제대로 켜지지 않은 그 어두침침한 공원으로 발을 들였다.

- 음. 여기 싫어. 내려가, 내려가자.

공원 입구에서 몇 발짝 못 들어간 곳에서 발끝에 빡 소리가 날 만큼 힘을 주고 버티며 그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제동을 걸고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날 본다. 그리곤 이내 눈빛이 엄청 흔들린다고 놀리듯 웃으며 아주 유유히, 내 손을 끌고 발길을 돌려 공원 밖으로 나간다. 괜히 약은 오르는데 겁먹은 내 모습을 너무 날것으로 들킨 것 같아, 밝게 가로등이 켜진 길로 들어서며 실없는 농담을 던져본다.

- 갑자기 아무도 없는 운동기구가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런데 내가 말해, ‘어머, 이 시간에 혼자 운동하는 분이 있네.’ 무섭지?

- 그럼 내가 말하겠지. ‘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인데?’

우리는 괜스레 땀이 난 두 손을 꼭 잡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산을 내려온다. 나에게 호러에 가깝던 대상들이 사랑스러웠던 순간들로 기억되어 자리 잡아간다. 마음이 잘 맞으니까 이 사람이 더 좋은 건지, 이 사람이 좋으니 어떤 것이든 다 좋다고 느끼고 마는 것인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이 밤, 우리 둘의 간극이 또 한 번 야무지고 단단하게 메워진 기분이다.

그리곤 이 손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위험한 생각이 또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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