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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e Oct 16. 2024

내가 지켜줄게요

떨림의 농도


짙어진 저녁 빛에 얼굴이 노래져 잠들어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요 며칠 웬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 하더니 기어이 주말에 폭면 중이다. 미간에 작은 주름을 만들고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그 사람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짜증이 난 것 같기도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한 그 표정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워 입을 맞춰버린다. 가져보지 못한, 또 앞으로 가져볼 일 없을 모성애 같은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나. 이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참 많이 가깝고 편해졌다. 이직을 하며 따로 얻은 오피스텔로 출근 도장을 찍은 지도 2년이 다 되어, 은연중에 드러나는 예민한 부분이나 개인적인 취향이 묻어난 루틴 같은 것들은 서로 꿰고 있다.

약속을 어기거나 잊거나 하지 않는 일에 많은 에너지는 쓰는 이 사람은, 소소한 계획이나 본인에게 전혀 중요치 않은 일, 이를테면 나의 치과 예약 날짜 같은 것 까지도 일일이 앱으로 사용하는 스케줄러에 기록해 둔다.


한 번은 친한 지인들과 어디 어디에 맛있다는 곳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새벽형 인간' 그 자체인 한 부부는 다른 일정 후에 약속 장소에서 보기로 하고, 나머지 4명 중 약속 장소와 비교적 가까운 우리 집에 모여서 차 한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조금 늦은 마지막 한 사람과 앞으로 10분가량 더 있어야 도착한다는 통화를 마치자 그의 손이 핸들 위에서 초조하게 움찔거렸다. 그렇게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곧 올라탄 자유로에서 그가 90km가 넘게 속도를 낸다. 그 답지 않아, 조수석에 앉은 내가 괜히 불안 불안하다.

- 오빠,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얘기했고, 도착하면 내가 미안하다고 싹싹 빌게, 안전 운전해요.

웃음기를 섞어 타이르듯 말하자, 잠시 놓친 정신을 불러오기라도 한 듯 멋쩍게 웃으며 다시 속도를 줄인 그 사람은 결국, 내려가야 할 입구를 놓쳐 예정보다도 5분가량 더 늦게 도착했다.


약속에 늦은 일로 스트레스받았을 거란 걸 알았다. 게다가 타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타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 다 같이 움직이는데 늦으면 어쩌냐, 한 마디 제대로 하질 않으니, 그런 것들이 그 속에서 저도 모르게 옥신각신 했던가보다.

- 늦어서 미안! 우리 다 일찍 왔는데 A오빠가 늦게 왔어! 오빠 혼내줘어~!

모임에서 막내인 내가 도착하자마자 미리 도착해 있던 부부에게 부러 애교를 섞어 사과했다. 나는 무척이나 기껍게 그를 위해 투사의 역할을 자처한다.

그런 날 보고 웃으며 '늦었어, 미안.' 말을 건네고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온 그를 보자, 영웅이라도 된 기분이다.


나는 어째서 그의 평안을 이토록 갈망하는 것일까.

연애 초반에 딱 한 번, 어떤 일인가로 대화 끝에 서운한 마음이 컸던 내가 박차고 나가버린 적이 있다. 그는 따라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럴 줄을 알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불쑥 찾아온 ‘이별’에 가까운 감정으로 시야가 눈물로 가득 찬 채 한 20분쯤 운전을 하다가, 이러다 사고가 나겠다 싶었다. 차를 곁길에 세워 잠시 숨을 가다듬고 나니, ‘직진하면 이대로 끝’이라는 불안이 실체가 되어 이정표처럼 눈앞에 보였다. 그대로 차를 돌려 그에게 갔을 때, 아이처럼 침대에 웅크리고 눈이 발개져 울고 있는 그를 보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내며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 일이 지나고 한참, 도대체 우리가 무슨 일로 그토록 심란한 감정이 되었었는지, 나는 무슨 일로 그 사람에게 그렇게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그 사람의 눈물 맺힌 불안한 눈동자와 나의 옷인지 머리칼인지를 꽉 쥐고 있던 덜덜 떨리던 그 사람의 손.

그런 것들의 감각이 기억 위에 너무나 아프게 각인되어서 다시는 그 사람을 혼자 두고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시는.


그가 어떤 종류의 슬픔으로도 매몰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건강하게, 가능하다면 오래 그의 곁에서 공생할 것이다. 사랑을 하기 위함으로, 한 발 앞서 나 스스로를 더 아끼기로 한다.

그러니 그는, 결국 이것까지 해낸다. 어쩌면 이미 그가 나를 부축하고 섰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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