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after #1

#1

by 이현성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증기를 내뿜는 주전자를 뒤로 하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밀치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연.


로렌이었다. 사 년만의 재회에 조금 벅찬 어떤 것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나는 로렌을 얼싸안았다. 내 포옹에 로렌은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두 팔로 나를 그러안았다. 얇은 스웨터만 걸친 그녀의 몸은 가녀렸다. 내가 물었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안 돼서 걱정했어.


―그냥……. 아, 들어가도 될까?


로렌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파악하지 못할 만큼 미세한 울음도 섞여있었다. 내가 문을 크게 열어젖히자 그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건물 내부로 들어온 로렌은 서성거렸다. 내가 앉을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서인가 싶었다. 나는 거실 바닥 아무 곳이나 앉으라고 말했다. 로렌은 생각하는 듯싶더니 식탁 쪽 의자도 괜찮냐는 말을 꺼내왔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방금 전 준비하려던 차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렸다. 예전부터 그녀는 차 종류라면 가리지 않고 잘 마시곤 했다. 찻잎이 물에 풀어지자 체로 걸러 잔에 담았다. 로렌은 내가 건네는 찻잔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차를 마시는 로렌을 보면서 나는, 이제는 잊어버린 사 년 전 그녀의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로렌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서른둘은 그녀가 결혼한 나이였다. 내가 본 로렌의 남편의 모습은 결혼식 일주일 전 그녀가 휴대폰으로 보인 사진과, 결혼식 당일 날 주례의 앞에 서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뒷모습이 전부였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왁스를 발라 올렸고, 키가 커서 몸의 비율이 좋았던 것만 기억해낼 수 있었다. 지나가듯이 본 그녀의 남편을 내가 지금까지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식탁에 앉아서 로렌은 사 년간의, 내가 알지 못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로렌은 스스로 이야기를 했다. 사 년 전에 로렌은 결혼을 하고 휴대폰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로렌이 휴대폰 전화번호를 바꾼 사 년 전은 동시에 키아마텔라 내전이 한창일 때이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전화번호를 바꾼 로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로렌과 연락두절인 상황에서 나는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그녀의 결혼이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는 것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 년의 공백 기간 동안 나는 그녀가 행복했을는지 아닐는지 알지 못했다.


로렌의 말은 대부분 두서가 없었다. 말의 차례가 없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정리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대체로 로렌의 말은 남편의 죽음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친구의 남편의 죽었다는 말은 안개처럼 멀리서 느리고도 정처 없이 다가왔다. 로렌이 결혼하고 삼 년 뒤에 제 남편이 죽었고 로렌의 남편이 군인이었다는 소식은 이름을 잊고 있었던 지인으로부터 미리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뉴스로부터 흘러나온 키아마텔라 내전에 투입된 우리 쪽 군사들이 전멸당했단 기사가 그의 죽음을 나에게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울어야 할지 침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하면서 로렌이 울지 않았으므로, 나는 다만 울지 않았다.


빈 잔에 차를 다시 따를 때, 로렌은 내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로렌의 남편이 총에 맞아 죽은 것은 사실로서 뚜렷해져 가는 모양이었다. 키가 커서 적탄에 맞기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맹군의 사망률이 점점 높아져가는 현실에서 조국이 더 이상의 원군은 파견하지 않겠다고 공표하자, 키아마텔라 본국에서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고 했고, 내전이 잠식되지 않고 번져서 죄 없는 인근의 국가들까지 관련되어 사상자 수만 소규모 국가 인구수와 맞먹는다고 로렌은 설명했다.


요즘은 죽은 남편이 꿈에 나타난다고 그녀는 말했다. 억울하게 죽은 사내가 쓸쓸해서 다시 짝을 찾아 헤매는 모양이었다. 나는 기가 허해서 그런 것이라고, 안 해도 되는 말로 로렌을 위로했다.


―신원 확인도 어려운 판국에 시체라도 찾으면 천운인 거라고 군의관이 그러더라. 장례식에 시부모님이 오셨는데 할 말이 없었어. 나 바보 같지?


그녀의 말이 시선에 얹혀서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로렌이 두른 머플러는 그녀가 보여주었던 사진 속 남편이 두른 그것과 흡사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로렌은 아이가 없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로렌은 대뜸 나에게 자고 가도 되겠냐는 의사를 밝혀왔다. 말이 분명해서 반드시 그러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욕실에 들어갔을 때 로렌은 샤워기를 틀은 채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안에서 소리쳤다. 나는 싱크대에서 온수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온수가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욕실 방향으로 소리쳐서 로렌에게 그것을 알렸다. 보일러 시스템은 아침까지 잘 동작되었었다. 로렌의 대답은 없었다.


욕실을 빌려 쓰고 나온 로렌에게 내 옷을 건네주었다. 로렌의 눈은 부어있었다. 방 안에서 속옷을 입고 나온 로렌이 브래지어가 조금 작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 셔츠를 입지 않은 로렌의 몸은 골격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건네주었던 셔츠를 다시 옷장에 넣고 큰 티셔츠를 주었다.


혼자 사는 집이어서 침대는 싱글용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이불을 들고 와 거실에 깔았다. 보일러를 돌린 채 로렌과 등을 맞대고 서로 누웠다. 잠들기 전에 로렌은 나에게 말했다.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로렌의 말은 내가 모르는, 아마도 이전에 들렀을 그녀의 친구들에게서 느낀 체념을 포괄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내가 그녀 자신의 다른 친구들 같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다. 흘러가듯이 말하는 로렌에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새벽에 로렌은 우는 듯했다. 잘 때 등이 떨려서 그런가 싶었다. 로렌이 일어난 자리의 베개가 젖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등을 돌려서 보이지 않을 테니 몰래 울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로렌이 간밤에 울었든 울지 않았든 간에, 지금까지 그녀가 행해온 그녀 자신의 울음은 내가 다가가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지금 나에게 와서 보이는 것이어서, 결국 로렌의 울음은 내게 공유되지 못하고 로렌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슬픔일 것이었다. 그녀가 새벽에 울었을지도 모르는 그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개별적 존재의 아픔이었다. 나는 자지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로렌은 아침에 내 집을 떠났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로렌은 말끔하게 씻은 상태였는데, 옷은 어젯밤에 입고 잔 상태 그대로였다. 로렌은 막 잠에서 깬 나에게 자기 옷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낡은 로렌의 옷은 어젯밤에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하자, 걸레가 되어서 나왔다. 그녀에게 사정을 그대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저께 새로 산 옷을 입혀서 로렌을 보냈다.


―산 지 얼마 안 된 거야. 입은 거 보니까 네가 더 어울린다. 가져가.


로렌은 한사코 거부했다. 버릴 수는 없어서 그녀의 옷을 작게 개고 그 위에 샌드위치를 올린 채로 종이백에 넣어서 손에 들려주었다. 로렌이 종이백 안을 들여다볼 때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감지 않은 머리를 긁는 나를 보고 로렌은 웃었다.


―……미안해. 고마워.


로렌이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그녀의 뒷모습이 그늘졌다. 로렌의 어깨는 좁았는데, 몸은 내가 잡으면 으스러질 듯했다. 나가는 로렌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현듯 내 속에서 밀쳐내어지지 않는 울음을 느꼈다. 나는 로렌을 붙잡았다.


―괜찮아. 네 남편, 남자답고 멋있는 사람이었어. 괜찮아. 네 탓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로렌에게 해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중언부언했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로렌을 끌어안았다. 로렌의 몸은 여자인 내가 안아서 품에 다 들어오는 체형이었다.


―괜찮아.


―……다음에 또 올게.


우리는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