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after #2

#2

by 이현성

나의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엔지니어였다. 남편은 중고로 기계를 싼 값에 사들이고 새롭게 개조하여 팔거나, 대기업으로부터 외주를 받아 각종 부품을 제조하는 일을 했다. 내가 남편을 만난 것은 그가 입대 후 첫여름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당시 조국은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병력 증강에 관심을 쏟았다. 조국은 군에 입대하는 남성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했고 경제·문화 활동에 대한 여러 혜택들을 제공했다. 매일 공영방송에선 군인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국방부를 선전하는 광고가 흘러나왔고, 밥벌이에 허덕이던 사내들은 하나 둘 입대를 신청했다. 남편은 제 돈벌이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국가의 선전에 홀린 여러 사내들 중 하나였다. 나는 나의 남편을 친구의 소개를 받고 만났다. 처음 본 남편은 키가 컸고, 눈이 작았고, 머리카락이 짧았다. 그 사람은 말을 하면서 쑥스러울 때면 짧게 자른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는데,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웃을 때 눈매가 호를 그려서 그 인상이 선해 보였다. 그다음에 남편과 만났을 때는 겨울이었다. 남편은 셔츠에서 코트로 옷을 바꾸어 입은 것 외에 여름에 만났을 때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남편은 나에게 교제를 신청했다. 고백을 할 때 그 사람의 눈은 나의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거절을 받을 것이란 체념이 들어앉아있었다. 나는 승낙했고 일 년 뒤에 그와 결혼했고 삼 년 뒤에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결혼을 반대했다. 부모는 자식의 결혼 상대에게 전쟁통에 재수 없게 죽어서 하나 있는 딸 과부로 만들 일 있냐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위치였다. 남편은 나에게 청혼할 당시 전출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현 시국에 사내들이 갈 곳은 내전 지역밖에 없었다. 나는 억지에 가깝게 결혼했다. 나는 남편의 죽음이 생각되지 않았다. 근거는 없었다.


남편이 죽기 전에 뉴스에서 키아마텔라 내전에 투입된 조국의 병사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나돌았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남편이 죽었음을 알았다. 알았다기보다는 선고를 받은 것과 같았다. 죽은 남편의 전사 통지서는 늦게 전달되었다. 남편의 사망 날짜는 1월 14일이었고, 내가 통지서를 받은 날짜는 3월 26일이었다. 남편의 사망 원인은 복부의 총상에 의한 장기 괴사였다. 조국은 사내들로 하여금 방어될 것인데, 조국은 제 안위를 위해 사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었다.


나는 단어의 조합으로 규정되는 남편의 죽음에 무서움을 느꼈다. ‘복부의 총상에 의한 장기 괴사’는 남편이 배에 총탄을 맞고 장기에 구멍이 뚫린 채 막사에서 널브러져 있다가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내의 내장을 후비던 기구로 응급조치를 받고, 붕대 속 상처가 곪아서 죽어갈 때 느꼈을 추위와 고독감을 전혀 풀어내지 못했다. 나는 죽음을 명시하는 한 줄의 문장에 몸서리쳤다. ‘복부의 총상에 의한 장기 괴사’라는 문장은 군인들 중 특정 인물의 사망을 통보하는 것이었으나, 나의 남편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대규모 장례식 날에 남편의 부모님은 검은 정장을 입고 제 아들의 묘비 앞에 섰다. 신원확인이 파악된 병사들은 시신이 화장되어 함에 담겨서 땅에 묻혔고, 그렇지 못 한 병사들은 유품이 태워져서 함에 담겼고, 그마저도 불가능한 병사들은 전쟁터의 흙이 담겼다. 아들의 시신을 찾은 부모들은 울었고, 찾지 못 한 부모들은 망연자실했다.


남편은 시신이 불에 태워져서 땅에 묻혔다. 남편은 죽어서야 제대로 된 조국의 관리를 받아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날이 어두웠으나 비가 오지 않아서 시부모님의 표정은 거칠 것 없이 그대로 보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시부모님은 울지 않았다.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미안해.


시부모님의 미안하다는 말은 나에게 하는 것이었다. 그 분들의 미안하다는 말은 삼십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어서 그 앞길의 막막함과 서글픔을 자신들이 어떻게 해줄 수 없으니 안타깝다는 말과 같았다. 죽은 사람이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나는 문득 차가운 독약을 들이켜고 싶었다. 나는 내게 닥친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없었고, 다만 달아나고 싶었다. 달아난다는 말은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는 말과 동어였다. 놓는 것은 어려웠고, 나는 살아남았다.


연을 만나기 전에, 뉴스에서 차에 치여 죽은 여성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자는 피해자 여성이 삼십대 중반이고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퇴근하던 길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여성은 차에 치인 후 척추가 나갔고, 그 상태에서 용의자가 차를 몰고 도주함으로써 차에 깔려 내장이 파열되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삼십대 여성과 뺑소니차 차주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로 판단되므로 원한 관계에 의한 복수극은 아니라는 것이 경찰청의 발표 사항이었다.


나는 뉴스 기사를 보면서 사 년 전에 죽은 남편을 떠올렸다. 죽은 남편과 죽은 여성은 서로 삼십대 중반이었고,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었다.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든 거리에서 차에 치여서 죽든 간에, 두 가지 모두 그 자체로 모든 상황이 귀결된다는 점에서 같았다. 나는 눈 먼 차에 깔려서 죽은 여성을 연민했다. 연민은 깊었다.


사 년 만에 만난 연은 머리카락이 좀 더 길었고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상태였다. 그것 말고는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려웠다. 세 번째로 들른 친구의 집은 바뀐 것이 없어서 편안했다. 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무뚝뚝한 여자이자 친구였다. 남자보다 여자에게 편한 상대였다. 연은 말을 들을 때 상대의 눈동자를 보면서 들었고, 들은 내용이 길든 짧든 간에 대답이 짧았으나 말이 상대방의 기분을 휘젓지 않았다. 내가 연을 만났을 때 나는 말했고, 연은 들었다. 구태여 위로의 말을 듣는 것보다, 그저 나의 말을 들어주는 것을 원하였음을 나는 연에게 이야기할 때 깨달았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으므로 내가 겨우 도착한 곳은 연의 집이었다. 연과 말할 때 울음은 나오지 않았는데, 연의 집에서 잘 때 나는 뱃속을 밀어내면서 끓어오르는 울음을 느꼈다. 울음은 영문이 없었고, 목구멍에서 치솟았다. 울음은 눈물이 없었다. 아침에 제 집을 떠날 참에 연은 나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연이 보기에 내가 안쓰러웠을 것이었다. 연의 안쓰러움이 제 울음을 불러일으키는데, 안쓰러움의 대상인 나는 울음의 주체인 연에게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내 울음에서, 연은 자신의 울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못할 짓이어서 나는 빠르게 연의 집을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기찻길에 나는 저녁으로 연이 포장해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샌드위치는 계란 소를 넣어서 맛이 부드러웠다. 샌드위치는 고등학교 때 그녀에게 같은 것을 얻어먹었던 경험을 불러일으켰다. 편안한 맛이었다. 차창 너머로 공터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며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이 이 아이의 발에서 저 아이의 발로 굴러다녔다. 아이들은 발들 사이로 사정없이 차이는 공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공 속에 아이들의 세상이 있었다. 공을 차면서 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경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집으로 향할 것이다. 공이 있든 없든 간에 저 아이들의 세상은 편안할 것이구나…… 공이 전부는 아닐 것이구나…… 나는 다 먹은 샌드위치 포장지를 구겨서 종이백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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