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after #3

#3

by 이현성

로렌은 나의 집에 온 이후로 일 년간 다시 연락이 두절되었다. 로렌을 보고 일 년이 지났을 즈음에 로렌 자신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가에서 받은 위로금과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보태서 카페를 하나 차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로렌을 보기 위해 주말에 수도로 갔다.


로렌이 말한 자신의 카페는 내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고, 테이크아웃 형태의 카페였다. 로렌은 앞치마를 하고 손수건으로 머리를 묶은 채로 나를 반겼다. 나는 로렌을 보자마자 돈벌이는 되는지 물었다.


―그럭저럭……. 적자는 아니야.


또 연락이 끊기더니 갑자기 웬 카페냐고 내가 묻자 로렌은 말없이 냉장고에서 빵을 꺼내더니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분주한 모습을 보이며 오 분 정도 뒤에 로렌이 만든 것은 계란샌드위치였다. 나는 실소했다.


―샌드위치 가게였어?


내가 샌드위치를 베어 물자 로렌이 맛있냐며 물었다. 샌드위치는 속 재료가 잘 다져지고 맛이 강하지 않아서 산뜻하게 먹기 좋았다. 나는 로렌이 건넨 샌드위치를 다 먹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내가 빈 접시를 건네자 로렌은 웃었다.


―맛있지?


로렌은 눈살을 접으며 웃었다. 웃을 때 눈매가 호를 그렸고 입술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치아가 희었다. 오랜만에 보는 로렌의 웃음은 신선했다. 카페 앞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있자 로렌이 커피를 가져왔다.


나는 로렌에게 안부를 물었다. 일 년 전 로렌이 나의 집에 찾아와서 직접 이야기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내가 로렌을 찾아가서 직접 말을 했다. 로렌은 일 년간 바빴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두 달간은 카페 인테리어와 메뉴 구성에 대해 생각했고, 여섯 달 동안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적당히 노하우를 쌓았고, 네 달 정도는 카페를 차릴 건물을 알아보러 다니고 카페 개업을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로렌에게 일 년 정도 알아본 걸로는 장사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말을 했으나, 로렌은 수익을 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로렌의 카페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고, 파는 음식에는 감칠맛이 없었다. 내가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 이따금 젊은 여자들이 와서 간단하게 점심거리로 먹을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갔다.


로렌은 담담하게 말했다. 로렌은 말을 할 때 커피 잔을 쓰다듬었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커피 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캐묻지 않고 작년에 그랬듯이 로렌이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렸다. 침묵은 길었다. 로렌이 말했다.


―죽는 게 무서워서 살아야 했는데 살려면 이유가 필요했어.


―그래서 이유는 찾았어?


―아니. 애초에 없었어.


나는 또 물었다.


―그런데 카페 차려서 잘 살고 있네. 이게 이유 아니야?


―결과물이야……. 살면서 나온 거지…….


―어려운 말이야.


―의미는 찾는 게 아니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야.


나는 로렌의 말을 정리할 수 없었다. 로렌은 나에게 말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말은 계통 없이 쏟아졌는데, 전부 로렌이 지난 오 년 동안 느낀 것들이었음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로렌이 홀로 서려고 하고 있음을 알았다.


몇 시간에 걸쳐서 나는 로렌의 카페에 있는 모든 메뉴들을 맛보았다. 로렌의 카페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커피가 네 종류, 음료가 세 종류, 샌드위치가 다섯 종류였다. 카운터에서 로렌은 빠르게 음식과 마실 것을 준비했다. 로렌의 손놀림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그때그때의 음식 제조에 필요한 위치에서 신속했다. 결과물이야…… 살면서 나온 거지……. 나는 로렌이 슬픔을 잊기 위해서 카페 일에 매달렸고, 그 결과 저렇듯 빠른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에 가까운 감정이 로렌을 다시 살게끔 하고 있었다. 모순적이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오후 여섯 시 경에 로렌과 작별했다. 자신의 자취방에서 자고 가라는 로렌의 말을 나는 거절했다. 기차에 타기 전에 로렌은 나에게 샌드위치를 손에 들려서 보냈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먹었던 계란샌드위치였다.


―작년에 너희 집 들렸을 때 네가 만들어줬던 거랑 비슷하게 만들었어. 먹으면서 가.


나는 어렴풋이 일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기억은 흐려서 잘 생각나지 않았다. 멀거니 서 있는 나를 보면서 로렌이 말했다.


―고마워. 잘 가. 다음에 또 오고.


봄에 로렌은 옷을 보내왔다. 소포에는 살구색 블라우스와 체크무늬 치마가 접혀 있었고 작은 쪽지가 담겨있었다. 예전에 나의 집에 왔을 때 내 옷을 받아간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쪽지에는 요새 장사가 나름 잘 되어서 먹고살만하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로렌이 보내준 옷을 몸에 대보았다. 옷은 체형에 맞았다.


로렌은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을 시작했다. 로렌이 보내온 쪽지에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의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가 기재되어있었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세련되고 심플했다. 홈페이지 디자인은 자신이 직접 컴퓨터를 배워서 꾸민 것이라고 로렌은 설명했다. 홈페이지의 갤러리에는 로렌이 직접 찍은 카페의 사진과, 그녀와 손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업로드 되어있었다.


문득 로렌이 보내준 옷을 입고 로렌의 카페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빨았다. 날이 맑아서 내일 낮 중으로 마를 듯싶었다. 나는 로렌의 홈페이지에 게시될 나의 사진을 생각했다. 옷은 사진의 배경이 될 로렌의 카페와 색상이 잘 맞을 듯 했다. 로렌은 잘 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Hereafter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