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중학교 이 학년 오 반, 열다섯 살 이었다. 어두운 머릿속 기억 한편에 드는 볕을 보면 봄이었지 않을까 싶다. 과학 교사는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우리에게 듣고 싶은 노래를 물었다. J는 변성기가 온 목소리로 ‘날아라 병아리’를 말했다. 교사는교실에 있는 큰 텔레비전에 물려있는 두꺼운 케이블을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 당시의 기기들은 수월하게 되지 않았다. 연결에 몇 번 애를 먹었다. 아마 벅스뮤직 플레이어로 재생했을 것 같다.
그때의 내가 노래를 들은 기억은 없다. 볼륨이 작아서였는지 바로 수업을 종료하는 종이 울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곡명과 뮤지션을 제외하곤 멜로디 한 부분조차 기억에 없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던 곡이 십여 년이 지난겨울 새벽에 그날의 기억과 떠오른 이유를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각각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여도 당장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가사 한 줄 모르는 이 노래를 얼굴에 솜털 가득한 그때의 내가 꼭 다시 들어야 한다고 굵고 검은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지금의 나에게 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 지난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아 세간에 관심을 받듯 두뇌에서 역주행이라도 시작한 것일까.
육교 위에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돌아가 우리 집 앞뜰에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천구백칠십사 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故신해철의 내레이션을 듣고 가사를 보며 노래를 들었다. 나의 기억회상 장치 테이프가 빠르게 되감긴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니 되감는 속도가 줄어가다 이내 재생되었다.
이천십구 년 여름이 기웃거리던 봄의 끝자락 오후였다. 사거리에 서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짐을 잔뜩 넣은 가방을 짊어지고 있어서 등에 땀이 났다. 큰 차들이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달려도 나에게 스치는 바람 하나 없다. 그곳의 신호는 잘 안 바뀐다. 신호대기 하는 곳에 심어진 나무들처럼 변함없이 그래 왔다. 나의 시선은 옆에 서 있는 나무에 닿았다. 슬금슬금 여름이 꽃잎을 거두고 푸르름을 더 짙게 물들이고 있다. 잎사귀를 보다가 나무에 손을 대고 훑어 내려갔다. 시선이 멈춘나무 아래에 홍시가 떨어져 터져있다. 이 계절에 어찌 된 홍시인가 싶어 가까이서 보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더 자세히볼수록 그 예감은 현실에 맞아들어갔다. 아기 새의 주검이었다.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발을 땅에서 뗄 수 없다. 이대로 갈 수 없었던 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아기 새의 주검을 밟을까 봐서였다. 어딘가에서 떨어져 이미 숨을 거두었지만 아주 작은 단 하나의 쓰라림 조차 스치지 못 하게 해주고 싶었다. 건너편에서 아장아장 땅을 디디며 건너오는 아이가 다가오지 못하게 보행 신호가 끝날 때까지 주검 앞에 서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오고 다시 차들이 달린다. 갈 길 바쁜 차들은 이 사거리 귀퉁이에서 일어난 일에는 관심이 없다. 많은 차와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알고 있는 일이다.
이미 개미 떼는 주검에 들러붙어 자연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자연은 부지런하다. 망설이지 않고 뜸 들이지 않는다. 일만 보고달려드는 지구의 베테랑 사원 같다. 제 자리에 서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한다. 새를 옮겨야 할 것 같았다. 망설이다가가방에 있던 신문지로 움켜쥐었다. 이럴 때 나는 필연을 느낀다. 며칠 동안 가방에 신문지를 가지고 다닌 건 이 순간 이곳에서 오로지 내가 해야 할 무언가를 마주하기 위해 언젠가 신문지를 가방에 넣은 것만 같은 거시적 필연을.
얼떨떨한 채 신문지로 감싼 주검을 쥐고 어딘가 불편하게 걷는 내 모습을 의아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신문지 속에 쥐고가는 것을 흉기로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주검을 쥔 왼손 손가락들 끝에 감각을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미미한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체온이 없는 플라스틱 같기도 했다. 사람이 앉아 있으면 플라스틱 의자에도 온기가 묻어있는데 생명체였던 존재가 온기 하나 없이 식어버린 게 가여웠다.
긴 오르막길을 올라 자주 머물던 도서관 한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만한 잔디밭 구석에 주검을 놓았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아기 새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도서관을 빠져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손가락 끝이 무겁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몸에 고루 퍼져야 할 피가 왼쪽 손 다섯 손가락으로 쏠린 것만 같았다. 손가락 끝이 부풀어 올랐다. 그 감각은 꽤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해에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동물들을 두 번이나 만났다. 차가운 겨울의 아스팔트 위에서 따스한 볕이 들고 풍부한 먹을거리와 깨끗한 물이 가득한 곳으로 몸을 두고 떠난 고양이를 발견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 저녁에도 전화를 받아줘서 고마웠다. 구조대원이 고양이 사체를 데려가는 모습을 거리를 둔 곳에서 지켜보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날 이후로 그 길을 지나가며 혼잣말했다. ‘고양이길…’
고양이 길을 지나 걷다가 보면 아기 새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사거리가 나온다.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 이곳을 지나면서 보행 신호가 바뀌어도 멈춰 서 있거나 건너오는 사람들을 신경 쓸 일은 없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차들이 달리는 소리와 그들이 내뿜은 매연의 뒤섞임 속에서 그날 일이 떠오른다. 아기 새가 딱딱한 바닥으로 떨어질 일 없는 더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을 따듯한 햇살에 더 가까운 다른 하늘에서 종일 자유롭게 날기를 바랐다.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사거리를 지나며 혼잣말했다. ‘아기 새 사거리가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