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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Sep 04. 2024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



  소리에 놀라 어깨가 움찔거렸다. 전화 수신 기능 고장을 의심해  만큼 울릴  없는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아이폰 벨소리를 공지음으로 설정해 두었던 것이다. 텀을 두고 울리는 음향은  곳에서 누군가가 오로지 나만을 향해 쏘아 보낸 신호음 같다. 몸을 일으켜 책상  휴대전화를 집었다. 화면에  있는 발신자 이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략 구십여  만에 휴대전화에서 보이는 이름이었다. 어느 때에 나에게 전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지금일 줄은 알지 못했다. 검은 화면에  글자와 숫자를 바라만 보다가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같은 번호로 같은 사람에게 걸려 온 전화. 이번 공지음은 다르게 들린다. 다소 재촉을 하는 것만 같다. 계속 듣고 있기가 거북스럽다. 발신자는 거듭된 고민을 겨우 마치고 나의 이름을 눌렀을 것이다. 전화기 너머 발신자가 보이는 것 같다. 기대감과 떨림 속에 전화를 건 발신자의 표정이 굳어 갈 것이다. 내가 전화를 못 받는 것이 아닌, 안 받는다는 걸 알 것이다. 벨소리는 문 뒤에 내가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문을 두들기는 소리처럼 들린다.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통화음을 무음 상태로 설정하고 손에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또다시 전화가 왔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벨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공지음은 애플에서 심중을 미묘하게 자극해 수신을 재촉하는 의도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얕은 한숨이 나왔다. 팔짱을 낀 채 화면을 내려 보다가 전화기를 뒤집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전화기에는 세 통의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아있었다. 부재중 전화라는 건 사람이 부재할 때만 와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부재하지 않았지만 부재중 전화를 세 통이나 받았다. 발신자도 수신자도 존재하는데 무엇이 부재해서 전화는 통화가 되지 못했을까.


  해가 한 번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살아가다 막막해지면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불안감에서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새로 돋아나 진동하는 불안에 떨어가다 그 떨림이 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몸 전체를 휘감고 내 방 천장까지 뻗어 올라 생의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못할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내가 고달플 때만 생각나는 이기적인 그리움이다. 자정에 다다랐을 무렵 집 근처 성당을 서성거리던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내가 발신자였다. 통화 연결음과 연결음 사이를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채웠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 퀵 보이스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삐-


  그 사람도 그랬듯이 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통화연결음이 끝이 나고 결국 내가 들은 건 녹음된 안내 음성이었다. 그 사람은 언젠가 그것을 세 번씩이나 들었던 것이다. 그중에 한 번은 내 목소리가 나오는 줄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둘 중 누군가의 발신은 있을 수 있겠지만 수신은 누구에게도 영영 없을 것만 같다. 수신자가 전화를 받아주지 않으면 통화로 넘어가지 않는다. 통신 기술 강국에서도 이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다. 내가 가입된 통신사의 ‘마음을 잇다.’라는 슬로건이 무색해지게도 이어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통화를 하고 싶다. 한밤중이어도 괜찮다. 화면 밝기에 눈이 아릿해져도 좋다. 그 사람이 소리샘에 남기지 못한 말을 듣고 싶다. 내가 남기지 못한 말들을 들려주고 싶다. 그때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래 살던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말하고 싶다. 장난꾸러기 조카는 여전한지 묻고 싶다.


   겨울바람 끝에 온기가 섞여 부는 이월 중순, 엄마는 마당을 청소 했다.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봄이 올 곳을 미리 청소해 놓으면 봄이 더 빨리 올 것만 같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혹시 언젠가 전화가 온다면 나에게 올 전화가 있다면 적어도 내가 먼저 전화벨 소리에 놀라 움찔거리거나 불편해지지 않게 벨소리를 바꾸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소리샘에 남기지 못하고 입가에 고여있다가 어디로인가 흘러간 말들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세월의 물결을 타고 서로에게 흘러 주기를 바라며 많은 벨소리를 일일이 들어보고 ‘물결’로 설정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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