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고 싶어졌다.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모아보았다. 여러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려면 소재가 필요했다. 여러 관심사와 취미에서 써본 글들을 두루두루 살펴봐도 나의 글은 삶을 적기 시작해서 감정으로 마침표를 찍어냈다. 습작들은 대부분 삶을 감각한 감정의 글이었다. 그래 감정. 일은 결과만이 남는다지만 다시 읽어본 글 속 내 삶은 감정으로 남아있다. 삶에서 각각의 시각에 일어난 여러 일들을 하나로 묶는 소재, 감정. 감정으로면 지난 모든 일이 설명되었다. 어쩌면 삶은 감정의 집합체가 아닐까. 지나온 삶을 하나로 묶는다면 감정으로 묶이겠지 싶었다. 나에게로 와버렸던 여러 일들을 한 품에 안는 일, 감정이라면 가능할 것만 같았다.
어느 해 여름 초입의 일이었다. 내 안에 슬픔이 퍼져갔다. 기온은 점점 오르고 내리쬐는 햇볕은 내가 있는 세상의 물기들을 말려가는데 가슴 속 내벽에는 물기가 맺혀 있는 것 같았다. 대낮에 오르막을 오르며 땀을 흘려도 맺혀있던 물기는 줄지 않고 벽을 타고 흘러 고여갔다. 뙤약볕이 내 안까지는 닿지 못했나 보다. 이만큼의 슬픔은 처음이라 혹시라도 나를 우울증에 걸리게 할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찌할 수 없어 내버려두었다. 그 감정은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해 보게도 했다. 나의 주변과 먼 거리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누군가의 슬픔을 헤아리다, ‘그랬을 수도 있겠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나는 퍼져가는 슬픔을 꺼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받아들인 이 감정 안에서 오히려 편안해졌다. 나는 품은 슬픔을 누리고 있었다. 그때 내가 알게 된 건, 옳고 그름이 없는 감정 정답과 오답으로 나뉘지 않는 감정이었다. 바깥 에서든 속에서든 나에게 다다르는 이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가고 싶다. 감정 자체로 거짓이나 숨김없는 여러 감정들을 닮아가고 싶다.
연희동 어느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직군 면접에서였다. 대화를 나누다가 요즘의 저는 슬픔을 주제로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 어딘가 침울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우려했지만 사실을 말했다. 내가 무언가 쓰게 했던 동력은 언제나 감정이었고 그즈음은 슬픔이었다. 슬픔은 삶을 섬세하게 보게 했고 내가 본 것들을 치밀하게 쓰고 싶게 했다. 내가 짓는 글이 유서 같기도 하다. 삶을 어루만져 가다가 시간의 수챗구멍으로 호로록- 기어이 사라져 버릴 감정의 감정을 적어내는 일 같다. 결국에 가서 사라지는 감정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내 삶에 글로 남겨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