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쥰세이 Oct 27. 2024

엄마의 통화목록에는 없는




#1

  둘째 이모는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커다란 트럭과 충돌사고였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어난 일로 기억하고 있다. 습지가 기억난다. 밟으면 질퍽한 소리를 내는 흙 위에서 회색 조끼를 입은 엄마는 발을 구르며 오열했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마 화장한 유골을 물가에 뿌린 자리일듯싶다. 아주 오랜 기억에서 졸음운전과 신호위반, 두 단어가 어른들의 목소리로 울리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글을 쓸 때면 시간 순서와 사실관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서술하기 위한 작업을 꼼꼼히 하는 편이지만 이 일에 관해서는 엄마를 통해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바로 물어봤던 모르는 일투성이였던 그때의 나는,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일투성이인 지금의 나와 자못 다르다.   

  엄마는 여섯 명의 형제자매 중 두 분을 먼저 보냈다. 둘째 외삼촌이 공사 현장에서 낙상사고를 당했다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오랫동안 수화기 앞에 쭈그려 앉아 있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통화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드문드문 여자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움직이는 소리를 낮추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는 철부지에게도 발소리를 줄이게 할 만큼 무거웠다. 둘째 외삼촌은 꽤 오래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내가 대학에 진학했을 무렵 돌아가셨다. 외삼촌은 군 복무 중에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구타를 당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시대의 아픔이 외삼촌의 아픔이 되어버렸다. 추억 하나 없이 얼굴형만 옅게 떠오르는 둘째 외삼촌의 생이, 세기가 바뀌어 버린 지금의 나에게까지 사무치는 아픔이 되어 서글퍼진다. 우연히 보고 엿들은 어렴풋한 기억을 적어 가기 위해 기억의 미간을 찌푸리며 보면 잠시 선명해지지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맵다. 그 일들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날이 선 칼바람 같은 세월에 마음이 도려져 나갔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형제자매들의 속을 헤아려보다 가슴이 아려온다.   



#2

  이천구년 외할머니는 지하 세계에서 잠시 세상에 나오셨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같은 곳에 묻어드리기 위해 계시던 곳에서 바로 옆으로 합동 묘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인부들이 묘를 파기 시작했다. 천구백구십구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십 년이 지나서 땅 밖 공기를 접했다. 심장질환으로 거친 숨을 쉬시던 외할머니는 집을 떠난 뒤로 병원에만 계시다가 작은 숨 하나 없이 집에 돌아오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은 수술을 받았다. 감고 있던 염포를 걷어낸 할머니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새까맣게 되어있었다. 어른들은 고약한 병에 사용되는 약성이 독한 약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겁이 난 업자들은 시신 근처로 가지 않았다.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에게는 보였다. 그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급하지 않은 일들을 열심히 했다. 밖으로 나오신 할머니의 시신을 식구 중 누군가와 내가 옮겼다. 나에게는 별일이 아니었다. 무서운 일에 애써 용기 내어 참아낸 게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가 누워있는 들것의 아랫부분을 들었다. 그뿐이었다.  



#3

  영화 박하사탕을 많이 보았던 이천십구년 유월이었다. 그때 내가 마주하는 존재들은 나를 슬프게 했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그렁그렁 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그랬다. 긴 오르막 중턱에 있는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그랬다. 헉헉-거리며 오른 도서관 앞에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핸드폰을 잘할 줄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왜 그런지 한 번 봐줄 수 있어요?” 

휴대전화는 긴급통화 기능만 작동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휴대전화와 운영체제와 다른 제품이었기에 아는 게 없었지만 군데군데 실밥이 터진 남색 가죽 케이스에서 휴대전화를 빼냈다. 다른 조치를 취할 방법도 알지 못했고 단말기 내부의 칩을 꺼낼 도구도 없어서 일단 휴대전화 전원을 껐다가 전원을 켰다. 

“어- 됐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감춘 것 하나 없는 흡족한 얼굴로 아주머니는 당장 전화할 곳이 있다고 하면서 통화 목록을 눌렀다.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이름을 눌렸다.  

  ‘엄마’였다. 엄마와 통화하며 좋아하는 아주머니의 웃는 얼굴을 가까이에서 봤다. 우리 엄마처럼 미간에 주름이 있었다. 아이라인 문신이 있고 분홍 립스틱을 발랐다. 엄마가 겹쳤다. 어딘가 성나 보일 수도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만큼 휴대전화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도 닮아있다. 닮지 않은 게 있다면 우리 엄마 통화 목록에 엄마는 없다. 엄마가 휴대전화가 생긴 후로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다.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하고 엄마와 통화하며 내가 힘들게 오른 길을 가벼이 내려가는 아주머니를 보다가 돌아섰다. 도서관 화장실 거울 앞에 서면 습관적으로 매무새를 고치다가 나는 한 생각에 슬퍼졌다. 그 아주머니도 나도 엄마가 있는데 우리 엄마가- 엄마가 없다는 게 나를 슬프게 했다.  



#4

  나는 엄마의 슬픔을 슬퍼한다. 엄마가 지난 일을 잊어가기를 지나온 슬픔을 매해 잃어가기를 꼭 그러기를 바란다. 저녁을 먹고 바닥에 앉아 빨래를 개며 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세월이 닫아놓은 엄마의 마음속 슬픔의 창을 두들기는 장면이 없기를 바란다. 흐르는 시간이 지나가며 이는 바람에… 감정이 흔들리며 일어나는 바람에… 그 창이 열리지 않기를 바란다. 한파에도 창을 열어 꼭 집 안을 환기하는 엄마가 만일 스스로 그 창을 열어 삶을 환기하는 날이 온다면 지난 슬픔에 새롭게 슬퍼지지 않게 서랍 속에서 오래전 굳을 대로 굳어버린 보라색 수채화 물감처럼 이미 딱딱해져 있기를 바란다.   

  알고 있다. 엄마 오빠 동생을 떠나보낸 보낸 엄마에게 삶의 어느 순간 문득 엄마의 슬픔으로 스치는 바람 한 점 없었을까. 우리네 삶을 담은 드라마에서 지난 일 비추는 장면 하나 없었을까. 여러 일에 여러 날을 슬퍼했을 엄마를 알고 있다. 엄마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기로 한다. 언젠가 엄마가 슬퍼하면 그 굳어버린 보라색 수채화 물감 위로 눈물방울 떨어지면 눈물에 녹은 슬픔 흐르면 흐른 슬픔 엄마에게 물들어 번지어가면 보라색 슬픔 내 손으로 닦아주어 살 비비고 살았던 사람들 부재를 메워주고 싶다. 당신 피와 살로 자라 당신 뱃속에서 나온 나의 존재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