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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는 무죄입니다

(부제: 사모님의 손끝 사건 보고서)

by 소피아

봄이 오면 늘 뭔가를 다듬고 싶어진다.
감정, 일정 그리고 오늘은... 냉이.


싱크대 앞에 서서

냉이를 한 줌 집어들고
칼을 들었다.
조금은 무심하게
조금은 익숙한 척하면서.
(사실 익숙한 건 냉이가 아니라

나의 감정 기복인데...)


"앗!"

검지손가락에서 피가 스멀스멀.

굵은 냉이를 가르다 그만 손가락까지..!

통증보다 빨랐던 건 놀람과 당혹스러움
곧이어 묘한 감정이 찾아왔다.

사소한 실수 하나에

하루가 느려질 수 있다는

이상한 슬픔과 귀여운 체념 같은 것.


‘나, 한동안 어설퍼지겠구나...’


이제 며칠간은 요리도, 운동도

머리 감는 것도 다,

슬로모션 버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고, 차를 우리고
세탁기 버튼을 누르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내 손.

그 손이 얼마나 많은 걸 해내고 있었는지

깊게 베인 속살 사이로

검붉게 올라오는 피가

선명하게 알려주었다.


냉이는 여전히 향긋했고

그 자리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얼른 반창고를 꺼내 붙이며
오늘의 교훈을 가볍게 감쌌다.


"손끝은 아팠고

냉이는 향기로웠다.
삶이란 늘 그렇게 두 가지로 함께 온다.”


그러니 다음부턴
칼을 들 땐 꼭
서두르지 않고
감정도 다듬고
냉이도 다듬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예쁜 반창고로 코디하기.

핑크색, 꽃무늬, 하트 모양...

상처에도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감정적 사모님의 감정 요약


냉이는 무죄,

사모님의 감정은 약간 기소되었다가

결국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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