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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n 26. 2020

창문에 달라붙은 먼지가 씻겨 내려가듯이

마음에도 샤워가 필요하다


나는 비 내리는 게 좋다. 정확히는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길 좋아한다. 너무 많은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 같은 건 사양이지만, 온 땅을 적실 정도로 충분한 양의 비는 좋다. 도시보다는 한적한 교외의 비가 더 낫다. 아무도 없는 시골보다는 사람들이 찾아올 만큼 가까운 근교가 적당하다. 자동차가 간간히 지나가지만, 초록의 풀과 나무가 더 많은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큼지막한 카페가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 죽치고 앉아 있어도 눈치 보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한다. 물론, 거거 익선. 크면 클수록 좋다. 커피 맛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시지 못할 정도만 아니면 상관없다. 커피 맛보다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이 포인트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가면, 가급적 구석진 곳에 자리 잡는다. 2층이나 3층이면 더 좋겠다. 비 내리는 바깥을 더 잘 볼 수 있으니까. 1층밖에 없다면 가급적 창가에 앉아야 한다.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진 못하더라도, 물 웅덩이에 빗방울이 일으키는 파동을 보는 것도 꽤 운치 있다. 카페를 가득 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아도 상관없다. 카페에서 만들어지는 소음은 서로 부딪히고 합쳐지면서 기분 좋은 웅성거림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웅성거림은 오히려 나를 풍경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참고로 천정이 낮거나 좁은 공간에선 기분 좋은 웅성거림이 없다. 이런 곳에선 옆에서 하는 말소리, 핸드폰이 내뱉는 소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이 모든 게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소음이 기분 좋은 웅성거림으로 변하려면, 적당한 높이와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규모 있는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날 그랬다. 장마가 시작되었고, 밖에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몸이 조금 안 좋아 회사에는 휴가를 냈다.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게 맞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이상 가볍게 바깥공기를 쐐는 게 낫다.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몸이 안 좋다. 공기도 탁하고 침대에 누워 늘어지기 때문에, 몸 상태가 더 나빠진다. 그래서 가급적,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바깥으로 나간다. 차를 몰고 멀지 않은 카페로 간다. 커다란 창으로 밖이 잘 보이는 괜찮은 테이블을 고른다. 그리고 내리는 비를 보며 따뜻한 커피를 홀짝인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와 비가 주는 청량함, 그리고 카페인의 각성 효과까지 더해지면, 마음은 차분해지고 온 몸에 개운함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걸 휴가까지 써가며 해야 해? 웬 사치냐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다 보면, 내 의지로 사는 건지 남에게 휘둘리며 사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분명, 가족과 회사에 충실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데, 어딘가 구멍 뚫린 것처럼 마음 한편에 허전함이 느껴진다. 이럴 땐, 한발 물러서서 여유를 즐기자.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는 외딴 곳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한결 마음이 나아짐을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창문에 먼지가 붙고 얼룩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에도 때가 낀다. 화를 내고, 기분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 모두, 우리 마음에 기분 나쁜 불순물을 남긴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별일 아니게 됨을 알면서도, 사소한 문제 하나가 머리에 남아 온종일 마음을 지배한다. 마음에 쌓인 얼룩을 제때 지우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마음의 창을 오염시킨다. 오랫동안 닦지 않은 창문으로 밖을 보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음에 얼룩이 쌓이면 본래 내 모습이 흐릿해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난 뒤, 바깥으로 나와 공기를 들이마시자. 더없이 맑고 상쾌하다. 공기 중의 먼지와 공해가 사라지고 한 여름의 열기가 사그라든 탓도 있겠지만, 어쩐지 모르게 마음도 개운해진다. 마치 샤워기의 물을 틀고 몸에 붙은 먼지와 때를 씻어 내듯 내리는 비를 보며 마음의 때를 벗겨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매일 아침 몸을 씻고 이를 닦지만, 사실 마음은 잘 돌보지 않는다. 몸에 먼지와 때가 쌓이듯 마음에도 나쁜 것들이 쌓이게 마련인데, 마음에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한편에 방치해둔다. 마음이 병들고 우울함이 찾아오지 않게 하려면 몸을 매일 씻듯이 마음도 자주 들여다보고 문제는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마음에도 샤워는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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