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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May 25. 2020

나도 꿈이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 꿈이 있었다.


어릴 적, 집에는 백과사전이 있었다. 여느 다른 집처럼 우리 집의 백과사전 역시 읽기 위함이 아닌 전시용이었다. 그나마 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백과사전을 들쳐보던 아이였다. 지적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한 권에만 관심을 보였다. 바로 미술. 총 15권에 13권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 나는 그 책을 찢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내 꿈은 화가였고, 그 책이 나를 화가로 인도할 거라 믿었다. 시간이 흐르고 중학생쯤 되었을까? 내 그림 실력이 출중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그림 그리는 건 재밌었지만, 흥미가 떨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소위 이해찬 1세대로 불리던 학생이었다. 교육부는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파격적인 대학 전형을 발표했다. 보충수업을 폐지하고 특기 적성 교육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고, 모두들 환호했다.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다는 말은 예전처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3학년에 올라가면서 그런 세상이 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한 가지만 잘해서는 대학 가기 힘들었고, 모든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배신감을 느꼈다. 학생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현 교육부에 분노했다. 교육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현실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었다. 차라리 내가 더 잘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진짜 제대로 된 교육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교육부 장관이 되고 싶었다.

한국에서 고등학생(빠르면 중학생, 요즘은 더 빠를지도)쯤 되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 대신, 남들과 똑같이 더 나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부해야 한다. 꿈, 좋아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은 점차 잊어버린다. 수능 시험 점수가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의 등급을 결정한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상관없이 점수에 맞는 대학,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선택한다. 대학에 와도 마찬가지다. 더 높은 연봉, 더 나은 기업에 취직하려고 온갖 스펙을 쌓는다. 영어 하나 쓸 일 없는 직종에 지원하면서 영어 성적에 목맨다. 대학은  이상 국가와 인류 발전에 필요한 이론과 응용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다. 취업으로 가는 관문일 뿐이다.  



우리는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꿈꾸던 세상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처럼 어렸을 적 꿈은 한때의 추억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제는 모두들 부자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연봉을 받으려고 이 회사 저 회사를 옮겨 다닌다. 주식과 부동산이 유일하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살아간다. 언제부터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다. 수능 시험이 끝난 날부터 인지, 대기업에 합격하고 환호하던 그때부터인지. 아니면,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어른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과 다르지 않게, 미리 그어 놓은 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가르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우선 공부부터 잘하라 말한다. 이루지 못할 꿈은 진작에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취업이 잘되는 실용적인 학과에 가도록 설득하고, 연봉이 높은 대기업이 무조건 좋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삶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으면서도 똑같은 길로 안내하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한다.

아이들의 꿈은 추상적이고 현실감이 없다. 원하는 모습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른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매료되어 이미지만 쫓을 뿐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어렵다 해서, 아이의 꿈을 막아서는 안된다.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불가능하다고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길이 있고 무엇이든 원하는 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가혹한 현실이 꿈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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