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 Jul 13. 2020

끝나가는 관계가 아쉽긴 하지만

관계의 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OOO님이 새로운 사진을 추가했습니다.


페이스북 알람이 울렸다. 오래된 친구의 새로운 업데이트 소식. 페이스북을 잘 사용하진 않기 때문에 알람이 울려도 대부분 무시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친구의 이름은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누를까 말까? 결국, 그 이름이 내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마트폰에 뜬 알람이 없어지기 전에 재빨리 화면을 눌렀다. 친구의 페이스북에 있는 글과 사진을 보며, 참 많이 변했다 싶었다. 오랜 시간 많은 것을 나누고 대화하고 공유했던 사이였는데, 긴 시간 교류가 없던 만큼 둘의 거리도 멀어진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마음속에 어떤 머뭇거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한겨울 얼어있는 호수를 건너기 위해 발을 내딛을 때의 기분 같았다. 대체 뭘까? 뭐가 맘에 걸렸을까? “메시지” 버튼을 누르고 “잘 지내?”라고 물어보면 그만 일 텐데, 무엇 때문에 이 간단한 시도조차 못했을까?


고민하다가, TV를 보던 아내에게 물었다.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하기 어려웠던 적 있어?”


“응, 나도 최근에 OO에게 연락하려다가 그만뒀어. 아무렇지 않게 연락할 수 있는데, 다시 예전처럼 지속하긴 어려울 것 같더라고. 연락 없이 지낸 시간만큼 서로 많이 변했잖아. 우리가 공유하는 거라곤 어린 시절 기억밖에 없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한 것 같더라고.”


내가, 그런 걸까? 다시 예전처럼 관계를 지속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아무렇지 않게 친구에게 말을 걸고 안부를 물어볼 수 있지만, 그다음엔 무슨 말을 할까? 시간 내서 만나자고 할까? 약속이나 잡을 수 있을까? 이제 각자의 삶과 인생이 있는데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낼만한 여유가 있을까? 만약, 오래전 친구에게서 갑자기 연락 왔을 때, 나는 그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yes라고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이미 내 시간은 가족, 회사, 글쓰기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여유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만남이라도 부담은 부담이다.


관계가 끝나간다.


친구, 직장동료 관계든, 그냥 아는 사람이든 간에 더 이상 관계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관계는 서서히 끝난다. 신나게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뚝하고 침묵이 찾아왔을 때, 어색해서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할 때, 대화중에 나를 이해 못하는 듯한 말을 할 때, 그리고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더 이상 노력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면, 관계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끝난 관계가 아쉽냐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답해야 할 것 같다. 끝난 관계가 아쉽다기보다는 오히려 끝이 뻔히 보이는 그런 관계가 아쉽다. 절친했던 회사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면, 이상하게 연락이 뚝 끊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메신저로 이야기 나누던 사이였는데, 회사를 나갔다 해서 갑자기 모르는 사이처럼 변해버린다. 사실 누군가 잘못했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회사라는 공감대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회사를 옮긴 친구는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다. 당연히 이전 직장의 회사 동료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연인관계는 어떤가. 오늘부터 1일이라며 가슴 뛰는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이 어느 순간 ‘헤어져’라는 한마디로 관계를 종료한다. 모든 것을 같이하고 공유하던 둘도 없이 좋은 사이였는데, 말 한마디로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돌아서 버린다. 하지만, 마음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없기 때문에 이별 후 한동안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관계가 끝나감을 뻔히 아는데, 그럼 뭐하러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회사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연인에게 ‘좋은 남자 친구’가 되기 위해 왜 노력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자신을 알 수 있다. 백설공주의 마법 거울이라면 또 몰라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보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을 구체화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결국 내 모습을 완성해 가는 과정의 일부다. 오래된 친구를 더 이상 만나지 않더라도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연락은 끊어졌지만, 친구와 나눈 시간과 수많은 대화가 당시의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다시 연락하지 못함이 아쉽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모든 관계를 다 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만은 말자. 헤어짐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헤어짐은 만남과 마찬가지로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의 일부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문에 달라붙은 먼지가 씻겨 내려가듯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