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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l 27. 2020

존중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조건이다

어제저녁, 캠핑장에서 있던 일이다. 나는 밥을 데우려고 공용 주방의 전자레인지 앞에  있었다. 전자레인지에는 다른 사람의 즉석밥이 데워지는 중이었고, 3~4분은  기다려야 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자레인지의 3~4분은 10분을 웃도는 느낌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게다가, 주방의 온도와 습도가  높았다. 개수대에 사람이 가득했고, 모두 뜨거운 물로 설거지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다림과 더위를 피해 바깥으로 잠시 나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덩치가  만한 남자가 주방에서 나왔다. 한눈에 인상이 별로였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속이 훤히 보이는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술을  마셨는지 이미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리고 배는 터지기 직전까지 나와 있었다. 외모로 사람을 쉽게 평가하면  되지만, 첫인상에는 무시할  없는 힘이 담겨 있다.

남자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  먹었으면 치우지!!”


듣기에 거북할 정도로 짜증 가득한 말투였다. 처음에는, 누군가 개수대를 더럽혀 놓아 그런  알았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기분 나쁠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상황에 처했더라도 아마  남자처럼 기분 나쁠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떤 여자가 주방에 들어서고 있을 ,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던  남자는 여자를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먹었으면  치워라!!”

그러자 여자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투로,

그만해라..”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뭐지?

어느덧 4분이 흘렀다. 이제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차례가 되었다. 비닐 뚜껑을 살짝 열어 즉석밥 두 개를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그리고 레버를 3분으로 맞췄다. 잠시  노란 불이 켜지고 ‘우웅 거리는 전자레인지 특유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기다리는 시간.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쓸데없이 만지작 거렸겠지만, 아쉽게 수중에 핸드폰이 없었다. 텐트로 돌아가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오면 전자레인지는 이미 멈춰 있을  같았다. 그래서   없이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남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지 얼굴에는 짜증으로 가득했다.

남자가 떠나고, 조금   사람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싸운 건가? 그런  아닌  같다. 각자 정확히 한 마디씩 했을 , 싸웠다  정도의 대화는 아니었다. 화를 냈다기보다는 오히려 경멸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면, 다툴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라도 생각과 행동은 서로 다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경멸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이때는 차라리 싸우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변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대가 없는 사람이라면 화낼 필요 조차 없다. 아무리 떠들어도 상대가 아랑곳하지 않는데 뭐하러 화를 낼까? 이럴 때는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낫다. 화를 내는 사람의 입만 아플 뿐이다.

부부라는 관계는 서로의 의지로 약속한 사이다.  때부터 아는 사람도 아니고,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도 아니다. 어느 순간, 만나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다가 ‘결혼이라는 일종의 계약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혼은 사랑보다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름을 인정할  알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존중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존중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조건이다.


관계에서 존중이 결여되면 폭력에 가까워진다. 나보다 직급이 낮다고,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나보다 어리다고 상대를 함부로 대한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나는 네가 그렇게 생각할  몰랐다’라고 가해자는 변명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 권력을  사람은 결코  반대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안희정과 박원순 사건, 그리고 모든 한국 사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미투 운동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가 존중이 결여된 채 만들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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