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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ug 10. 2020

소년은 여전히 외롭다

소년은 집이 싫었다. 학교에서도 모범적이었고 많지는 않지만 어울리는 친구도 몇 명 있었다. 가족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소년의 부모는 소년을 사랑했다. 표현은 약간 서툴렀지만, 결코 마음이 작지는 않았다. 소년이 집을 싫어할만한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왠지 모르게 집이 싫었다. 집에만 돌아가면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소년을 옥죄었다. 탈출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가출 같은 극단적 선택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가출을 생각할 만큼 큰 문제도 없었고, 그런 선택을 할 만큼 충분히 대담하지도 않았다. 대신, 감당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탈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자. 집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자. 그러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차를 타고 도착한 서울은 첫인상이 나쁜 도시였다. 서울역 광장과 복도 곳곳에는 수많은 노숙자가 기거하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노숙자는 처음 보았다. 마치, 전국의 노숙자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 노숙자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 보았던 그 광경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생각해왔던 서울은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런 상상이 이 모습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걱정으로 가득 찬 엄마를 집으로 보내드리고,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자유는 소년의 생각과 달랐다. 집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보다는 혼자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머릿속에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이 작은 공간에 혼자 있다는 생각은 소년을 쉽사리 꿈으로 인도하지 못했다. 불러도 대답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 하나에 잠에서 깰 정도로 깊이 잠들지 못했다. 소년의 세상은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년이 어릴 적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는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혼자 밤을 보내는 것도 익숙해졌다. 내가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작은 소리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이제, 혼자서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를 다니며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 소년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매일같이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구장, 노래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날이 저물고 어두워져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도 애써 외면했다. 아무도 없는 집이 싫었다. 조금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컴컴한 방의 스위치를 누르는 일은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분명하지만, 온전히 마음을 채워주기엔 부족했다. 아무리 같이 시간을 보내고 술을 마셔도 그때뿐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또 혼자라는 사실이 소년의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소년은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친구보다 가까운, 가족같이 가까운 누군가가 절실했다.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소년은 연애에 빠져들었다. 20대의 시간과 대학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었다. 동아리, 미팅, 친구의 소개 등 수많은 이성이 그를 스쳐갔다. 여러 이성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소년은 마치, 연애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을 찾았다. 옆에 누군가 없다는 사실을 소년은 견딜 수 없었다. 연애는 소년에게 숨 쉬는 공기 같았고, 허전함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연애가 반복될수록 마음이 처음과는 다름이 느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대화는 겉돌았고, 마음은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다. 상대와 함께 있어도, 늘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소년은 이해받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에게 온 마음을 다 했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에게 연애는 외로움을 임시로 채워주는 도구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이 제일 중요했고, 상대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간이 흘렀고, 소년은 결혼했다. 아이도 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같이 밥 먹고 대화를 나누고 온전히 믿어주는 가족이 있다. 집에 돌아가면 반겨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소년의 허전함을 메워주었다.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던 어두운 방의 침묵이 소년을 괴롭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이제는 어두워도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다. 앞으로 정체 모를 불안함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어릴 적의 그 허전함과 답답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 감정은 아무런 예고도, 아무런 소리도 없이 은근슬쩍 다가온다. 밥을 먹다가도, 즐겁게 대화하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곁을 차지해버린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집을 나오면 자유로워 질거라 믿었던 10대의 소년과, 연애에서 외로움을 해소하려 했던 20대의 소년처럼 다른 것으로 현실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거쳐 불가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소년은 받아들일 생각이다. 공허하고 외로운 감정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마음 한편에 놓아두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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