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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Oct 26. 2020

보노보노의 보노는 아니었지만, 보노보노가 좋아졌어요

그 이름, 어떻게 지으셨어요?


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받는 질문이다. 우리 회사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입사할 때 사용할 이름을 지어야 한다. 직책도 상관없고 직급도 상관없다. 어떤 위치에 있건 고용 형태가 어떻든(3개월 정도 일하는 인턴이라 할지라도) 영어 이름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에 살다 왔거나 어학연수 경험이 있어 이미 이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영어 이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은 난감하다. 어떤 이름이 나와 어울릴까? 어떻게 불리면 좋을까? 평생, 한 이름으로만 살다가 이제 와서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어색하다. 제임스? 세바스찬? 어떤 이름이 좋을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회사에서 보노로 불린다. 스펠링은 Bono. ‘모두가 훌륭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란다(처음.. 알았다). 사실, 보노는 흔히 사용되는 이름은 아니다. 외국에 나가서 “My name is Bono”라고 말하면 단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물론, 내 발음 문제가 더 크리라 생각한다). 몇 번씩 말하고, 큰소리로도 말해보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스펠링을 하나씩 말해준다. 알려진 사람 중에서는 밴드 U2의 리드 보컬이 그나마 유명하다. 본명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내가 아는 Bono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리고 만화 캐릭터로 범위를 넓혀보면, 보노보노가 떠오르는 정도.

특이한 이름을 지어서일까? 아니면, 보노보노가 연상돼서 그런 것일까? “보노는 보노보노 좋아하세요?”, “보노보노에서 이름 가져오신 거예요?” 등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내 이름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아일랜드에 잠깐 간 적 있었고, 그때 U2에 관심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U2의 보컬 이름을 따서 보노라고 지은 거예요. 이름의 어감도 괜찮은 것 같고요”라고. 왜 설명하는지, 내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그게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변명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꾸역꾸역 설명해야 했다.

그래서 책상에 보노보노 인형이 놓았다. 보노보노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설명 방지용이다. 사람들이 인형을 보고, ‘아, 이 사람은 보노보노에서 이름을 따왔구나.’라고 생각하길 바랬다. 그러면, 사람들이 질문하지 않을 테고, 난 더 이상 변명 같은 설명을 할 필요가 없게 될 테니까.

인형을 아끼거나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한 번 놓아둔 물건을 잘 옮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놓아둔 보노보노 인형은 언제나 책상 한편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고, 속으로 말도 걸어보고, 먼지도 털어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정이라도 든 걸까? 문득, 보노보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느릿느릿하고, 잘하는 것 없고, 소심하고, 걱정도 많은 해달. 하지만 친구들을 무척이나 아낀다. 그리고 좀처럼 화내는 일도 없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 아주 사소한 것도 궁금해한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는 열심히 하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포기가 빠르다. 만약 회사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다면, 사람들에게 기피대상 1호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노보노 같은 캐릭터가 잘못된 건가? 소심하고 걱정이 많지만, 친구를 아끼고 호기심 많은 게 무슨 잘못인가? 오히려 조금이라도 느린 것을 참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다른 이들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보노보노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내가 맞다고 믿고 살아온 세상에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내가 맞고 남들이 틀리다는 생각. 어떤 일에서 느끼는 기분과 감정을 남들도 똑같이 느낄 거라는 생각. 이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서로 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내 기준으로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나누고 평가해 버린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지적하고 비판하는데 몰두한다.

뜨끔했다. 언제나 내가 기준이고, 내 생각이 맞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충고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고, 항상 가르치려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면 하찮게 여겼고, 똑같은 일상을 지루해했다. 잘못인 줄 알지만 인정하지 않았고, 이기는데만 몰두했다.


어느 날 보노보노는 친구가 되고 싶어서 도리도리를 찾아가지만 도리도리는 수줍어하면서 계속 징징거린다. 하지만 보노보노는 당황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화내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가만히 곁에 머문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하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도 계속 울기만 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내가 운 이유는 배고프고 싶지 않은데 배고파지는 거랑
춥고 싶지 않은데 추워지는 거랑
무섭고 싶지 않은데 무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중에서 -


보노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벌써 햇수로 8년째다. 서현우라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있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보노로 불릴 때가 더 많다. 때로는 “현우야”라고 부르는 것보다, “보노야”라고 부르는 게 더 정감이 갈 정도다. 게다가 내가 선택한 이름 아닌가. 애착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이제는 회사를 나가더라도 보노라는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사용할 것 같다. 이직한 회사에서 닉네임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보노가 될 것이고, 브런치의 필명도 마찬가지고.


처음에는 U2의 보노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보노보노의 보노가 더 되고 싶은 마음이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묵묵하게 살 줄 알고, 있는 그대로의 친구 모습을 받아들이고 공감할 줄 아는 보노보노와 친구들처럼 말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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