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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ug 01. 2020

가끔은 쓰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다시 일요일 저녁. 곧, 마감이다. 그런데, 젠장. 아직, 한 글자도 못썼다. 일주일 내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수 없이 고민했지만, 마땅한 소재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감 시각은 월요일 아침 10시, 출근 전까지다. 돈 받고 쓰는 글도 아니고, 잡지에 기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매주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며 쓰고 있다.


월요일 아침 10시는 스스로 정한(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정한) 마감 시각이다. 글쓰기를 거르면 5,000원의 벌금을 낸다. 가볍다. 쓰지 않아도 부담 없이 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흔쾌히 벌금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돈은 중요치 않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써야 한다. 이번 주도 발행하기 전까지는 잠들지 않을 생각이다. 밤샐지도 모르겠다. 눈은 점점 감기고 머리는 멍해진다. 가능하면 이대로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쓰고 싶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불안함을 억누른 채 잠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아침에 씻고 커피 마시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글 쓴다니… 그건, 책에서만 존재하는 일이다.


weekly-blogging을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넘었다. 1년은 대략 52주니까, 최소 52개는 썼다.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은 피로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중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우울에도, 글쓰기를 미룬 적은 없었다. 가끔은 자동차에 제트 엔진을 단 것처럼 글이 쏟아져 나오듯이 2개 혹은 3개를 쓴 적도 있었다. 일주일에 최소 1개라고는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때면 글 하나 쓰기도 벅찰 때가 있었다. 물론, 주어진 시간에 최상의 결과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부족한 시간이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운동은 꾸준함이 중요하듯이 글쓰기도 꾸준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 몇 시간 운동하는 사람보다는, 매일 30분 운동한 사람이 더 건강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분량과 주제, 그리고 개인의 역량과 여유에 따라 적절한 간격을 설정하고 규칙적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너무 빡빡하거나, 글쓰기를 잊을 정도로 여유롭기보다는 항상 글쓰기를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간격이 적당하다. 그리고, 데드라인을 정한다. 적절한 데드라인은 내게 일정한 속도를 부여한다. 글이 잘 써질 때는 마구 발행하다가, 뜸해지면 두어 달에 한번 쓰는 식의 패턴을 방지한다. 데드라인을 정하고 글을 쓰면, 늘어지는 법이 없다. 주제를 정하고, 생각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정해진 시각에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참자. 몇 번(혹은 수십 번)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나면, 내 삶의 일부를 글쓰기가 차지하는 순간이 온다. 


마감이 글 쓰는 습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백 퍼센트 공감하지만, 때로는 써야 한다는 강박이 문제를 일으킨다. 어떻게든 마감을 지키려 글을 쓰다 보면, 가끔은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없을 것 같은 글이 나온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성에 차지 않는다. 글이 아니라 싸놓은 똥 같은 느낌이다. 부끄러워 공개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문장을 고치고 표현을 바꿔 보아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 글을 쓰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떻게든 이미 쓴 내용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벌금은 내기 싫다. 그리고 자존심도 지켜야겠다. 에라, 모르겠다. 이대로 내려버리자. 눈을 질끈 감고 변기 레버를 내리듯 발행 버튼을 눌러버리자.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데드라인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려고, 벌금을 내기 싫다는 이유로 이렇게 포기하듯 글을 써야 할까? 발행하는 순간은 후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만 쌓인다. 가능하다면 눌러버린 발행 버튼을 물리고 싶다. 시간을 그때로 돌린다면, 차라리 벌금 낼 것이다. 이런 글, 다시는 쓰고 싶지 않다. 볼 때마다 두렵다. 다시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냥, 지워버리고 싶다. 


도무지 쓸 수 없겠다 싶을 때면, 잠시만 모든 것을 내려놓자. 돈을 내면 어떻고, 자존심이 상하면 또 어떠한가? 블로그를 똥으로 채우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이럴 땐 마음을 비우고, 쓰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자. 한 주를 쉬고 그다음 주에 쓸 글을 생각하자.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좋은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 


가끔은, 쓰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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