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지 않고 절제된 산뜻한 글쓰기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음식은 담백하다. 욕심 없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 또한 담백하다. 그리고, 빛깔이 진하지 않고 산뜻한 옷을 두고 담백한 옷이라 말한다. 이렇듯 과하지 않고 절제된 것을 두고 담백하다 표현한다. 그렇다면 글이 담백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간결하고,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쉬운 그런 문장을 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일을 그르치는 법. 화려하고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다. 문장을 길게 늘어 뜨리고, 어려운 단어를 가져다 쓴다. 글쓰기가 미숙한 사람일수록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쉽다. 부사와 형용사 같은 문장을 꾸미는 단어는, 문장을 산만하게 만든다. 문장을 길게 늘어뜨리고 접속사를 남발해도 마찬가지. 문장만 길어질 뿐, 이해하기 훨씬 어렵다.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사용한 단어는 문장을 모호하게 한다. 잘 쓰기 위해 들인 노력이 오히려 문장을 망칠 수 있다.
단문이란 주어와 술어를 하나만 사용한 문장이다. 단문은 짧고 간결해서 가독성이 좋다. 그래서 잘 읽힌다. 반면에 복문은 여러 개의 주어와 술어를 사용한다. 한 문장이 문장 내에 종속되어 있거나, 접속사로 두 문장을 연결한다. 문장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글쓴이의 호흡을 따라가기 힘들다. 자주 맥이 끊기고 지루하다. 이해가 안 돼서 같은 문장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는다. 심하면,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단문만이 해답은 아니다. 전문 작가들 중에 복문을 구사하면서 명확히 의미를 전달하는 작가도 많다. 하지만, 그 반열에 오르기까지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단문으로 잘 써야 복문도 잘 쓸 수 있다. 처음부터 복문으로 문장을 구사하는 초보는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처럼 자기 문장에 끌려간다. 길게 쓴 문장이 어색해 계속해서 고친다. 문장을 계속해서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어느새 처음 생각과는 전혀 다른 문장이 나타난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생각을 따라 글을 써야지, 생각이 글을 따라가선 곤란하다.
노래는 높은음과 낮은음이 잘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고음은 ‘클라이맥스’에 잠깐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야 듣는 사람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복문을 쓰면 읽는 사람이 힘들다. 복문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 -
접속사는 문장 사이를 연결할 때 사용한다. 앞 뒤 문장이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을 때, 논점이 서로 상반될 때, 뒷 문장이 앞 문장을 꾸미거나 그 반대일 때 접속사를 붙인다. 접속사는 두 문장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도 어떤 접속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접속사는 유용하지만 그만큼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평소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옷을 챙겨 입고 달리러 나왔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평소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서 옷을 챙겨 입고 달리러 나왔다.
처음 문장과 다음 문장의 차이는 접속사 '그래서' 뿐이다. '그래서'는 이전 문장에 대한 결론을 말할 때 사용한다. '그래서'가 없는 문장에서 달리는 건 특별하지 않다. 일상적이고 익숙하다. 아마 일주일에 두세 번은 달리는 사람일 것 같다. 반면에 '그래서'가 있는 문장을 쓴 사람은 조금 다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고, 달려야겠다 생각했다. 아마 아주 오랜만이거나 처음일지도 모른다.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슬프다, 기쁘다, 즐겁다 처럼 단어로 직접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또 하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실만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방법이다. 어느 방법이 더 낫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담백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표현은 자제해야 하는 것이 좋다.
글이 아니라 대화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는가? 슬프다, 기쁘다, 화났다고 말할 때인가? 아니면,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 상황, 몸짓의 변화로부터인가?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소시오패스가 아닌 이상, 후자일 때 상대의 감정 변화를 느낀다. 누군가와 소통할 때 말보다는 표정, 말투, 상황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아주 우스운 상황에서 누군가 슬프다고 말하면 어떤가? 반대로 모두가 기분 좋은데, 누군가 우울하다 말하면 어떠한가?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글도 다르지 않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보다는 담담하게 사실을 써내려 갈 때 감정의 깊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나도 몰랐다. 저녁이 돼서야 생일임을 깨닫고 너무 슬퍼졌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나도 몰랐다. 저녁이 돼서야 생일임을 깨달았다. 버스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괜스레 비가 맞고 싶어 졌다. 가방에 우산이 있었지만, 꺼내 들지 않았다.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딱히 살 건 없었지만, 동네 구멍가게에 들렸다. 허전한 마음에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소주 한 병과 쥐포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글은 슬프다는 말을 직접 표현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데 자신조차 생일을 잊어버렸으니 얼마나 슬프겠는가? 두 번째 글은 직접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우산이 있지만 꺼내지 않은 것, 오늘따라 집에 돌아가는 길이 길게 느껴지는 마음, 그리고 나를 위해 뭐라도 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슬픔을 대신한다.
음식과 사람과 옷이 그렇듯이 글도 담백해야 한다. 뺄 수 있는 요소는 최대한 빼야 한다. 문장의 핵심을 이루는 주어와 목적어, 술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혼자 읽으려고 쓰는 글이면 상관없다. 하지만, 공유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라면 항상 읽는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간결하고 명확히 써야 한다. 접속사를 배제하고 단문으로 작성해야 한다. 직접적 감정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사실과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해야 감정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