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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Sep 07. 2020

왜 내 브런치 구독자만 늘지 않을까?

2020년 4월 6일, 첫 번째 브런치 글을 포스팅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났다. 대략, 20주. 일주에 글 하나를 써서 지금의 스무 번째 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겨우 20개밖에 안되나 싶다가도, 벌써 20개나 썼구나라고 자신을 토닥여본다. 하지만 일 년은 52주고, 매주 써도 겨우 52개다. 20개라는 숫자를 보면 다소 작아 보이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을 빗대어 보면 결코 작지 않다.

현재 내 브런치 구독자는 18명이다(모든 구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글이 스무 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많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가끔 브런치를 탐험하다 보면, 발행된 글 숫자는 나와 비슷한데 구독자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의 브런치를 보고 있으면, ‘대체 어떻게 구독자를 모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거나, 출간한 책이 있거나, 탁월한 글 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인정한다.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게 중에 ‘이 정도 글인데?’ 싶은 글도 있다. 그런데도 구독자가 이렇게 많다니, 놀라웠다. 대체 이 사람 글에 어떤 특별함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독 버튼을 눌렀을까?



클릭을 부르는 제목


공개된 공간에 글 쓰는 행위에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내가 작성한 트윗을 리트윗 하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답글을 달아주고, 블로그에 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기를 바란다. 가끔 조회수나 구독자, 댓글에 연연하지 않겠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런 마음인지 단순한 허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개하지 않을 글인데 굳이 온라인에 써야 할까.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쓰면 그만 일 텐데 왜 온라인일까. 일기장에 쓰면 글의 구조도 문장도 마음 가는 대로 쓴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이라 나만 아는 단어나 암호를 써놔도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만에서 수십만(SNS까지 포함한다면 수백만)의 글이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세상이다. 그 수많은 글 중에서 클릭의 간택을 받는 글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쓰여짐과 동시에 쓰레기통에 처박혀 생을 마감한다. 누군가 밤낮으로 고민하고 쓴 글이 고작 몇십의 조회수만 남긴 채 사라지는 것은 분명 슬프다. 하지만, 온라인은 만만치 않은 곳이다. 아무리 잘 쓰인 글이라도 읽히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읽히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구독자나 지인이 아닌 이상, 내 글을 클릭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오로지 제목뿐이다. 유저는 수십 개 혹은 수백 개 글 중에서 제목만으로 어떤 글을 읽을지 판단하기 때문에 제목에 핵심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정보를 제목에 담으면 곤란하다. 적당한 선(15자 내외)에서 사용자가 글을 읽어야겠다 판단할 정도의 정보만 제공해서 궁금중을 유발하는 것이 좋다.

제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용과 관계없이 자극적인 제목만 갖다 붙인다면 곤란하다. 내용과 관계없이 어떻게든 클릭을 유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레기로 만드는 꼴이다. 반짝 조회수는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글의 신뢰가 무너진다. 신뢰가 바닥이 된 브런치는 구독자의 이탈로 이어진다.


(여기서 어떤 제목이 클릭을 부르는지는 다루지는 않겠다. 혹시라도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100만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를 한번 읽어보자)



일관성 있는 주제


아무리 잘 쓰인 글이라도 사람들은 관심 없는 분야의 글은 읽지 않는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정치 글을 들이밀어봤자 소용없다. 마지못해 읽더라도 지루하고 재미없어할 게 분명하다.

구독이라는 행위는 다음 글을 기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다음 글을 기대한다’는 말은 앞으로 당신이 쓰는 글에 관심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글의 스타일과 문체에 반해서 구독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고민하는 주제나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을 기대하며 구독을 누른다. 고로,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는 브런치는 딱히 구독하고 싶지 않다.

여행기를 제법 잘 써서 구독했던 브런치가 있었다. 담백한 문체에 국내 곳곳을 다니며 쓴 여행기라 흥미가 있었다(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 그런데 점점 도시의 역사, 전통, 미신 같은 고리타분한 주제를 많이 다루다 보니 흥미가 떨어졌다. 알림 창에 새 글이 도착해도 읽지 않게 되었고, 알림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구독을 취소해 버렸다.

내 브런치도 비슷하다. 일관성이 없다. 주제는 산발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주는 이런 주제였는데, 다음 주에 어떤 글이 나올까? 발행하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식물을 주제로 썼다가  인간관계에 대해 쓴다. 그다음엔 글쓰기에 관해 썼다가, 또 그다음에는 요가로 주제가 변경된다. 예측하기 어렵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구독자 입장에서 이런 브런치는 잘 구독하지 않는다. 글의 주제가 일관적이고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 구독 버튼을 누르는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을 쓰자


라이킷과 구독자 수는 글쓰기에 최고의 당근이다. 늘어나는 구독자 숫자 1에 감동받고, 줄어드는 1에 자괴감에 빠진다. 구독자가 줄어들면 도대체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구독을 해지한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 혹시 몰라 다른 작가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쓴 글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명쾌한 답변은 어디에도 없다.

라이킷과 구독자는 브런치에서 인기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그렇기 때문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종속된 사람은 이 수치를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유튜버가 시작과 말미에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달라고 외치는 건 당연하다. 구독과 좋아요가 많아야 조회수가 많아지고, 그래야 돈을 버니까. 브런치도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행위가 돈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독과 좋아요가 많아야 의뢰도 들어오고 출간도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구독자와 라이킷을 늘리려고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글의 제목도 바꿔보고 글의 내용과 구조도 바꿔본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주제를 선정한다. 문체도 바꿔보고 발행하는 빈도도 조정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정말 그 숫자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라이킷과 구독자가 늘어나면 재밌다. 글 쓰는 것이 더 이상 괴롭지 않다. 오히려 신난다. 다음 글을 써서 라이킷과 구독자를 더 늘리고 싶다. 선순환이다. 라이킷과 구독자가 늘어나 어느새 100명이 넘고 1,000명을 넘어섰다. 내 글도 이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먹히는구나 싶다. 욕심이 생긴다. 더 많은 라이킷과 구독자를 원한다. 이제 내 생각과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원하고 더 많이 클릭할 것 같은 글을 쓴다. 글에서 내 색깔이 점점 사라진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상 구독과 라이킷에 연연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내 색을 버리면서 까지 남들을 위해 글 쓰다 보면, 어느새 글 쓰는 원동력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십여 년 전, 사람들이 하루키에 열광했던 이유가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썼기 때문은 아니다. 하루키라는 사람이 가진 고유한 색과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열광한 것이다. 라이킷 구독자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색을 버리면서까지 그 숫자에 목매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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