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에서 면접관으로 참석했을 때였다. 면접자는 이력이 화려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다양한 사람이었다. 이력서만 보면 절대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모두 이번에야말로 괜찮은 사람이 지원한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우선, 가볍게 지원동기와 기본적인 성향에 대한 질문으로 면접을 시작했다. 대략 30분이 지난 후, 본격적으로 기술 질문을 이어갔다. 참고로 개발자의 면접은 대체로 기술면접에 가깝다. 인성적인 부분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개발 지식이 부족하다면 합격하기 어렵다. 회사마다 면접 자마다 그 비율은 달라지겠만, 대부분 5:5 정도로 인성과 개발 관련 지식을 묻는다. 질문을 풀어가는 방식도 면접관, 면접자,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날은 면접자의 블로그를 토대로 질문을 이어갔다. 블로그에 꽤 많은 글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런데, 질문을 이어갈수록 생각만큼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설프게 기억하고 있거나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 글도 있었다. 꽤 오래전에 작성한 글이라면 이해하겠다. 그런데, 최근에 쓴 글에 대한 질문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다니. 블로그에 쓰인 글은 대부분 전문적이었고, 지나칠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지식은 아니었다. 다른 면접관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결과는 불합격.
모든 분야가 그렇지는 않지만, 개발자에게 기술 블로그는 하나의 커리어다. 배움의 기록이자 그 사람의 지식을 알 수 있는 최고의 레퍼런스기 때문에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블로거를 꿈꾼다. 시작은 쉽다. 하지만, 유지는 어려운 법. 꾸준하게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시작은 모두 그럴듯하다.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의욕이 넘친다. 일 년이면 수백 개의 글이 채워져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소재가 떨어지고, 회사일이 바쁘고, 컨디션이 나빠지면 글쓰기에 소홀해진다. 누구 하나 검사하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써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다 보면, 하루에 한 번 쓰던 글이 일주일에 한 번이 되고 한 달에 한 번이 된다. 그러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나도 새로운 글 하나 없는 죽은 블로그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용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성실한 사람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블로그의 목적이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내가 배워온 것,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을 공유하는 목적으로 쓴다. 하지만, 최근에는 커리어를 포장하기 위한 용도로 블로그를 만드는 사례가 많아졌다. 블로그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욱여넣는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등록된 글 수, 꾸준한 포스팅, 그럴듯한 내용이 우선이다. 어떻게든 쉬지 않고 글을 채워가는데만 집중한다. 글의 질은 뒷전이다. 지나치게 짧거나 성의 없이 가벼운 정보만 나열한 글을 쓴다. 또는, 여러 글을 참고하며 짜집은 글을 마치 자신의 지식인 것처럼 착각하며 작성한다.
이렇게 축적한 지식은 오랫동안 기억될 리 없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금세 잊힌다. 면접 자리에서 그 친구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나치게 다양한 주제, 과시하기 위한 전문 용어의 과용, 어딘가 모르게 짜깁기한 듯한 느낌의 글이 제대로 된 지식 일리 없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널뛰기하듯 주제가 바뀌는 글을 쓰는 것은 쌓아 올린 지식을 무너뜨리는 짓이다.
그렇다고 글을 정성스레 쓴다 해서 반드시 내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주입된 정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 한번 포스팅했다고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기억의 천재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잊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깊이 있고 지속성 있는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 할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당연하듯 튀어나올 수 있는 그런 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답은 심플하다. 비슷한 내용, 이어지는 내용으로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다. 주제를 좁히고 지식에 살을 붙여나간다는 생각으로 확장하듯이 글 쓴다. 이전에 포스팅한 글을 이어 쓰듯이 새로운 글을 작성한다. 반복해서 입력된 정보가 뇌에 훨씬 오랫동안 머문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로 입증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은 되도록 삼간다. 초등학생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단어만 골라서 작성한다. 어려운 개념을 쉽게 작성하려는 노력은 개념 이해에 도움을 준다. 쓰는 사람이 용어를 제대로 이해 못한 상태로 남용한다면, 글의 내용은 오히려 모호해질 우려가 있다. 블로그는 사람들에게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써야지,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