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루키

1Q84

by 보노

나는 하루키의 팬이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해변의 카프카>까지. 그가 썼던 거의 대부분의 소설을 섭렵했다. 소설뿐 아니라 <먼 북소리> 같은 에세이도 좋아했다. 그의 책이라면, 헌책방을 뒤져서라도 기어코 찾아냈다. 세련된 비유와 은유, 디테일한 상황 묘사, 현실과 비현실의 절묘한 조화,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매력적인 등장인물 등. 나는 하루키가 창조한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정도로 몰두했던 작가는 오로지 하루키뿐이었다.

서른이 넘어서부터 였던가? 언젠가부터 소설을 찾는 빈도가 줄었다. 그렇게 열광하던 하루키 소설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하루키뿐 아니라 대부분의 소설에 흥미를 잃었다. 상상 속 세계보다는 현실 세계가 더 궁금했고, 경영이나 경제, 자기계발서를 펼쳐 들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고, 돈을 벌면서 부를 축적하는 방법(재테크)이 궁금해졌다. 결혼하고 이리저리 이사 다니다 보니 부동산도 알아야겠구나 싶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벅찼다. 상상세계보다는 현실세계를 잘 다룰 수 있는 일종의 ‘기술’이 절실했다. 경영, 경제, 자기계발서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단편소설 쓰기’라는 2020년의 목표 때문일까. 10년간 읽지 않았던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목표를 세운 지 반년이 훌쩍 넘었고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지만, 여전히 목표는 유효하다. 올해 안으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 읽기에 집중하려 한다. 많이 읽으면서 쓰기에 대한 감을 잡는 게 먼저다. 책은 가리지 않기로 했다. 집히는 대로 읽고, 관심 가는 대로 읽는다. SF부터 시작해서 웹소설, 순수문학까지. 국적이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예전에 읽은 소설이라도 원한다면 다시 읽을 생각이다.

어느 날 트위터를 훑어보다가, 최애 소설이 <1Q84>라는 어떤 사람의 트윗을 보게 되었다. 10년도 전에 읽어보았던 소설이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최애 소설이라면 믿고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1Q84>는 2009년에 1권과 2권이 먼저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3권이 출간되면서 비로소 완결되었다. 총 3권이지만, 전체 페이지를 합치면 2,000 페이지가 넘는다. 5권에서 6권으로 나눠서 출간했더라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각 권의 두께는 남다르다. 단편소설 하나 쓰기도 벅찬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쓴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책장에 종이책이 있었지만, 꺼내는 대신 카카오페이지에서 1권을 열었다. 무겁기도 했고, 이제는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편해진 탓도 있었다. 하루키 필생의 역작이라 불리는 작품에 걸맞게 극의 구조와 문장의 세련되고 디테일한 묘사는 여전했다. 덴고와 아오마메 두 명의 시점을 번갈아 묘사하는 하루키식의 기법도 반가웠다. 1권 당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한치의 지루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약 조절도 탁월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스피디한 부분이 있는 반면, 한 문장으로 넘어갈법한 상황을 위해 수 페이지를 할애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한 부분도 있었다. 전문 암살자, 비밀 종교 단체, 리틀 피플 등 흥미를 일으킬만한 요소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절대 빠지지 않는 성적 묘사까지.

1권을 완독하고 2권을 읽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말의 불안함도 없었다. 예전의 하루키다운 모습이 잘 묻어나는 작품이라는데 어떠한 의구심도 일지 않았다. 그런데, 2권이 끝날 때쯤이었을까? 어딘지 불안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등장인물과 묘사, 비유와 은유,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절묘한 조합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2/3이 끝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펼쳐놓은 이야기는 여전히 수습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하루키라면 잘 정리할 거라는 믿음은 여전했지만, 3권에서 이 모든 내용을 정리될까 확신할 수 없었다.

3권을 읽는 동안, 불안의 싹은 점점 크게 자라났다. 남은 페이지는 점점 줄어드는데, 펼쳐놓은 이야기와 내용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정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야기는 점점 두 주인공의 이야기로 흘러갔고, 결국 로맨스로 끝을 맺었다. 지금껏 하루키가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린 적이 있던가. 처음 보는 결말이었다. 어린 시절 잠깐 만난 친구를 왜 그토록 찾아 해 매는지, 그게 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일인지,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왜 그토록 길고 긴 이야기가 필요했는지, 나는 어디에서도 이야기의 당위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놓지 않고 끝까지 들고 있었던 이유는 단지 결말이 알고 싶어서였다. 어쩌면, 10년 전에 3권을 읽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하나가 아쉬우면 단점이 눈에 잘 띄는 법. 이 정도 스토리를 2,000페이지나 할애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생각해보면 상황마다 과하게 디테일한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인데 이렇게 몇 페이지를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부분인데 굳이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또한 문맥도 없이 반복해서 여자 가슴을 묘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다. 이런 불필요한 성적 묘사가 10대나 20대 초반 남자에게는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쩌면, 나만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의 댓글을 보더라도 칭찬의 글이 그 반대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1Q84>를 최애 소설이라 칭했던 그 트윗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오히려 내 독해력과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한 탓은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

내 기억에, 이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책은 항상 끝이 허무했다. 허무했지만 매력적이었고, 마음에 여운이 감도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감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기록적인 판매량, 압도하는 책의 두께 때문에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 정도 되는 작가가 이 정도 분량의 책에 담은 내용이라면 믿고 읽어도 된다는 믿음. 팬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당연하 믿음, 20대의 내게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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