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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Oct 03. 2020

건강하게 오랜 기간 영위할 수 있는 평생의 취미

회사를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사람이 눈에 띈다. 언제 어디든 일만 생각하고, 모든 신경을 일에 집중하는 사람.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할 일부터 생각한다. 하루의 시작도, 하루의 마무리도 오로지 일이다. 퇴근시간이 지나도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도 자의로 말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꺼내 든다. 마무리 못한 일을 계속하거나 내일 또는 다음에 할 일을 준비한다. 주말도 없다. 가끔 가족과 보내는 휴가 기간에도 노트북이 필수품 1위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문제없다. 언제든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먹고, 자고, 씻는 것 외에 오로지 일 생각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취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원히 일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끝이 온다. 아무리 일에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끝은 반드시 찾아온다. 끝이 왔을 때,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그다음의 계획이 없으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당장 오늘 뭘 하고 내일은 뭘 할까? 일에만 몰두한 사람에게서 일을 떼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뭘 할지 모른다. 공허하고 무기력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텅 빈 마음에는 우울이 자리 잡는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사람은 몰두할 대상이 사라졌을 때 받아들여야 할 상실감이 너무 크다. 단단한수록 쉽게 부러지는 법. 인간은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생물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다양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균형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 밸러스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그렇지 못하는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하다는 것은 다양한 연구로 이미 입증되었다.


건강하고 균형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과 분리된 여유의 행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취미 같은. 퇴근 후 술 한잔, 멍하니 TV 시청 따위의 행위가 아니다. 적당히 남는 시간을 때우는 그런 활동은 취미라기보다는 시간 죽이기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취미랍시고, 수십에서 수백만 원을 들여 장비를 먼저 산다. 활동은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으면서 장비 모으기에만 열을 올린다. 등산을 시작하겠다고 히말라야에서나 필요한 재킷을 산다거나, 사진을 시작하겠다고 십 수개의 렌즈와 최고가의 바디를 장만하는 것 같은 식이다. 장비가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맞지만, 취미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집에 있는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더라도, 핸드폰만 들고 사진을 찍고 다니더라도 만족한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라 얼마나 주어진 시간을 잘 즐길 수 있느냐다.


또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취미는 나를 다른 삶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운동삼아 시작한 요가로 학원을 차리기도 한다. 취미로 쓰던 글이 유명해져 작가로 데뷔할 수도 있다. 여행을 너무 좋아하던 사람은 여행작가가 되고, 영어에 미쳐있던 누군가는 하던 일을 관두고 영어 유튜버가 된다. 취미가 곧 직업이 되는 시대다.




최근, 부모님은 완전히 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동안 부모님은, 비슷한 또래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에 치여 살았다. 주말도 없고, 명절도 없었다. 주말도 없는 아버지 덕에 가족끼리 함께한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부모님이 딱히 일에 중독되어서는 아니었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을 돌보는데 힘을 쏟았을 뿐이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취향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몸을 움직였다. 오랜 기간 그렇게 바삐 움직이던 몸은 이미 여러 군데 고장 나 있었고,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전히 일에서 손을 뗀 부모님은 후련해하셨다. 늦잠을 자고, 여유롭게 산책을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찾은 부모님은, 막 그만두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다시 일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무료한 일상의 반복에 지루해하셨고, 자칫 우울증으로 번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부모 세대에게 취미는 사치였다. 그들에게는 TV 보거나 영화 보는 정도가 고작 취미라 부를 만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부양해야 할 부모는 돌아가셨고, 돌봐야 할 자식은 자기 인생 사느라 바쁘다. 일에서 은퇴한 나를 사회가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쓸모 없어진 기분. 멍하니 TV를 보고 대화 없이 꾸역꾸역 밥을 삼킨다. 새로운 것을 찾을 기력도 없다. 지금껏 스스로에게 집중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내게 집중하며 산다는 것이 뭔지도 모른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른다. 무기력과 허전함이 만든 빈자리는 우울로 점점 채워져 간다. 그들에게는 할 것이 필요하다.


식물을 선물했다.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볕의 위치에 따라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주고, 잎을 닦아 주고, 물 주는 주기를 생각하고, 적당히 흙이 마르면 물을 주는 활동이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와 공유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안 그래도 대화가 부족한 부모 자식 사이에 공유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꽤나 긍정적인 부분이다.




내 취미는 어떨까?  대학시절에는 당구 치는 걸 좋아했고 꽤 잘했다. 하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에 늦거나 늦잠을 자기 일쑤였고,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오래 머무르면서(난 비흡연자) 내 건강을 위협했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다. 20대부터 꾸준히 책을 읽었다. 다독은 아니어도 항상 읽는 책이 있었다. 하지만 읽기만 하는 것은 수동적인 활동이다. 수동적인 활동은 목적의식이 약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면 블로그를 만들어 감상을 남기는 편이 좋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보는데만 그칠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을 표현하자. 블로그도 좋고 SNS도 좋다. 어떤 활동이든 간에 인풋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작게나마 아웃풋을 만들도록 노력하자. 인풋과 아웃풋의 적절한 조합이 취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내 취미는 여러 개다. 글쓰기, 식물 돌보기, 그리고 요가(아직 좀 부족하다).


weekly-blogging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일주일에 하나씩 반강제로 쓰고 있다. 블로그가 두 개라 번갈아 가며 작성 중이다. 목표는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채우는 것. 하지만, 쉽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글쓰기 책도 찾아본다. 글 하나를 쓰고 고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글 한 개 완성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써 내려간다.


식물 돌보기는 코로나가 선물한 취미다. 재택근무로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관심을 줄 대상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은 식물이 벌써 20개가 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식물들을 살핀다. 밤사이 새 잎이 돋아났는지, 시든 잎은 없는지 확인해본다. 커튼을 열어주고 햇볕을 쐬어준다. 아파트 특성상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아 조금의 햇볕이라도 더 보여줘야 한다. 식물 등이 있지만, 햇볕의 따사로움에 비할바가 아니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오랫동안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작은 새잎 하나에 신나 하고, 축 쳐진 잎에 마음도 축 쳐진다. 집안 환경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긁어모은다.


건강을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매력을 느낄 만큼은 충분하다. 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진다. 오로지 몸에만 집중하는 느낌이 정신을 맑게 한다. 게다가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하다 보면 목과 어깨가 쉽게 결리는데, 요가를 한 뒤부터는 통증도 많이 줄었다. 요가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몇 년간은 계속해볼 생각이다.




건강한 취미란 어떤 것일까? 자신이 좋아하면 그만인 걸까?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취미는 다음과 같다.


생산적인 것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건 소비적이다. 나쁜 건 아니지만, 일시적이고 허전함을 동반한다. 글을 쓰거나 연주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떨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보자. 이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사회와 소통하자. 이런 활동이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사람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것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긍정적인 영향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어떤 공통된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라면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보다 우울할 확률이 낮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금전적 부담이 적은 것

돈이 많이 드는 취미는 언젠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몸을 움직이고 단련하는 행동이 결국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운동은 최고의 취미이자 평생 동안 가지고 가야 할 필수적인 활동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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