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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ug 24. 2020

요가하는 남자 #1 - 요가하는 남자


“요가하세요?”

누군가 요가 매트를 들고 있는 내게 물었다. “네”.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짧은 정적. 뭔가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몰랐다. 요가하냐고 물어보았고,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에 어떤 부연 설명이 필요할까? 하지만, 끝내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요가하는 남자에 대해 어떤 설명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의아해하는 그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마치 ‘남자가 무슨 요가냐’하고 비아냥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요가는 어딘지 모르게 여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굳이 요가원을 가보지 않고 헬스장 요가 수업만 보더라도 압도적인 성비를 보여준다. 대부분은 여성이고 어쩌다가 한두 명 남자가 섞여있다. 여자만 수련하는 요가 클래스에 남자가 들어오면 은근슬쩍 경계하는 분위기다. 그러니 남자가 요가한다 말했을 때, 상대방에게서 보인 의아한 표정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나는 유연한 운동이 하고 싶었다. 헬스같이 근육만 키우는 운동은 취향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몸이 뻣뻣한 남자는 유연한 운동이, 근육량이 부족한 여자는 헬스 같은 근육 운동이 적합하다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생각만 했지, 단 한 번도 도전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의 편견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꼭 요가일 필요도 없었다. 필라테스도 있다. 이외에도 유연함을 중요시하는 운동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왜 요가였을까?

요가에 대한 경험도 없고 지식도 전혀 없었다. 무작정 찾아간 요가원이 어떤 요가를 수련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요가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중 하타요가가 가장 대중적이다. 우리가 요가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하타요가라 보면 된다. 그 외에 핫요가(비크람 요가), 빈야사 요가, 아쉬탕가 요가 등 현대 요가의 종류만 해도 십여 개에 이른다. 내가 찾은 요가원은 육체적 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아쉬탕가 요가였다(그땐, 몰랐다). 요가원에 등록하기 전에 요가의 종류와 수련법 등을 미리 숙지했었다면, 조금은 나와 맞는 요가를 선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처음 수련하는 날. 회사일을 마치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원은 상상보다 작았다. 거실을 서너 개 붙여놓은 정도. 요가라고 검색하면 자연에서 수련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수련하는 공간도 넓을 줄 알았다. 중간중간에 나무나 식물도 있고, 인테리어도 인도풍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수련장에 들어선 순간 내 상상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곳은 완전한 빈 공간이었다. 인테리어나 장식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완벽한 사각의 실용적인 공간이었다. 하긴, 조금만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판교같이 임대료가 비싼 동네에서 불필요하게 큰 공간이 있을 리 없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음..?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동작 따라 하느라 바쁠 거라고 사전에 알려 주셨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생각했던 요가와 너무 달랐다. 천천히 호흡하고 느리게 몸을 움직이며 명상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상상했던 요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 상상은 또다시 깨져버렸다. 수련하는 60분 동안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는 요가 동작은 처음 듣는 외국어일 뿐이었다. 선생님이 다음 동작을 말씀하시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동작도 잘 모르는데, 이름도 어색하다 보니 주변 사람의 동작을 보고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첫번째 수련을 마치고선, 내가 땀에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땀으로 샤워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았다. 저녁이었고, 실내가 습하거나 덥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 온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리는 운동은 해본 적 없었다. 한여름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에서 한 시간을 달리면, 이 정도로 땀을 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량이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요가라고 우습게 본 탓일까?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정도의 가벼운 운동이라 생각했던 걸까? 요가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가는 의외로 근력이 중요한 운동(수련)이다. 팔로 몸을 들어 올릴 수 있어야 하고, 배와 등 근육으로 몸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로 가볍게 볼만한 운동이 아니다. 몸의 무게에 비해 근력량이 부족한 나는 내 몸을 들어 올리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련은 힘들다. 매번 땀으로 샤워한다. 아직도 동작과 이름은 매치되지 않는다. 아직도 힐끗거리며 다른 사람의 동작을 따라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달고 살던 어깨와 등의 통증이 줄었다. 그리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낡은 기계에 기름을 칠하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조금은 몸이 유연해졌다.

요가의 근본경전인 요가수트라에서는 ‘요가는 마음작용의 억제’라고 정의한다. 요가를 운동으로 생각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수련으로써의 요가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생각한다.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게 무슨 수련이냐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상단 부분 몸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몸이 건강해야 정신 또한 건강한 법이다. 몸이 피곤하고 불편하면 자연스레 마음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몸을 움직이고 몸이 하는 말을 들으며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 또한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요가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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