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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an 31. 2021

가지치기

식물을 키우다 보면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가지치기란, 자라나는 식물의 생장점을 잘라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행위를 말한다. 대부분의 식물은 위로 뻗어가려는 성질을 가지는데, 생장점이 잘린 가지는 성장 에너지를 옆으로 돌려 새로운 가지를 돋아나게 하고 기둥을 단단하게 만든다. 한쪽으로만 길게 뻗은 가지는 보기에도 별로지만, 성장에도 좋지 않다. 기둥이 충분히 단단하지 않은 식물은 에너지 공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면, 적절하고 과감하게 가지를 쳐내야 한다. 돋아난 새싹과 가지가 아깝다고 그대로 두면, 오히려 식물은 약해져 버린다.

키우는 식물 중 가장 애정 하는 녀석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올리브다. 마흔 개 가까이 식물이 늘었지만, 올리브만큼은 아니다. 집에 들인 지 1년쯤 되었던가. 처음에 키는 제법 컸지만, 목대는 두텁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 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수형도 나쁘지 않았다. 올리브 가격은 목대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사악해지기 때문에, 함부로 비싼 녀석을 데려 올 수 없었다. 내가 산 올리브로 5만 원 정도였던가.



나무를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는 특히 외목대로 좋아한다. 외목대란, 수직으로 뻗은 줄기 하나에 위로 가지와 잎을 키우는 형태를 말한다. 츄파춥스 모양을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외목대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기둥의 견고함이다. 키만 멀대처럼 크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둥이 충분히 튼튼하지 않으면 작은 흔들림에도 쉽게 꺾인다. 처음부터 굵은 외목대 올리브를 데려왔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가격이 워낙 사악하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키 큰 녀석을 골라 데려왔다. 언젠가 외목대가 되길 바라면서.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식물은 환경에 따라 성장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 실내에서 잘 자라는 식물도 있고, 외부의 볕과 바람을 맞아야 비로소 잘 자라는 식물도 있다. 올리브는 후자에 속한다. 지중해의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늘 맞아야 잎이 잘 자라고 열매도 맺는다. 실내는 올리브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베란다가 있다면 조금 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같은 확장형 거실에선 살아남기 어렵다. 창을 항상 열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올리브는 성장 속도가 늦다. 새 잎이 돋아나거나 가지가 자라는 속도도 다른 식물에 비해 한참 더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새끼는 내가 돌봐야지. 끊임없이 영양제를 공급하고, 식물등과 서큘레이터도 켜주었다. 지중해 기후만큼은 아니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었다. 그 덕분일까. 주워온 나무 막대기 같던 올리브에 조금씩 새 순이 돋기 시작했다.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고, 기특하던지. 

그런데 좀 자란다 싶으니 가위질의 욕구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살펴보고 가지 칠 곳 없나 기웃거렸다. 조금이라도 자랐다 싶으면, 머릿속으로 외목대를 상상하며 과감히 잘라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기둥이 너무 가느다랗다는 것. 얇은 목대에 가지와 잎이 자라다 보니 지지대 없이는 서있기도 힘들어졌다. 약한 바람에도 곧 꺾여버릴 것처럼 쉽사리 휘청거린다. 욕심이 과했던 걸까? 좀 더 키운 뒤에 가지를 쳐내야 했을까? 다시 잘라내야 할 시기가 온건가?



가만 보면 우리도 식물처럼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마음을 다듬고 불필요한 것을 쳐내지 않으면, 들쑥날쑥 멋대로 가지가 자라난다.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곤란하다. 중요치 않은 일은 과감히 쳐내고, 꼭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는 가지가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둥이 튼튼하지 않은 채 윗 가지만 풍성한 나무는 작은 시련에도 뚝하고 부러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수형, 멋진 외목대도 중요하지만, 날 선 비바람에 견디기 위해서는 뿌리와 기둥이 튼튼해야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근본이 견고한 사람은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시 잘라버렸다. 

처음 데려왔을 때 / 가지치기 전 / 가지치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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