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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l 20. 2020

취미의 발견

캠핑으로 함께하는 시간

취미는 내게 개인적인 것이었다. 산을 오르고, 달리고, 글을 쓰는 행위까지. 취미라 부를 수 있는 모든 활동은 오로지 혼자만을 위한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혼자가 편하고, 혼자 하는 활동이 좋을 뿐이었다.


어쩌다 캠핑


코로나로 갈 데가 없어진 요즘, 캠핑에 빠진 사람이 많다. 여행은 가야겠고, 갈 곳은 없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이 제한적이다. 제주도 아니면 국내 여행 정도. 게다가 호텔에서 자는 것조차 마음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들 캠핑으로 귀결하는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캠핑용품 전쟁이 한창이다. 텐트 하나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고, 잘 나가는 제품은 몇 달을 기다려야 구할 수 있다. 사이트(텐트 치는 공간) 예약도 쉽지 않다. 1분 만에 모든 예약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다. 지금이 성수기 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거의 전 국민이 캠핑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는 게으르고 정리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캠핑은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텐트 치며 땀 흘리는 생각을 하면, 상상만으로도 거부감이 일었다. 남들 따라 한두 번 가봤지만, 그마저도 별도의 숙소를 이용했다. 그래서 캠핑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옛 친구들이 제안한 캠핑에 다녀왔다. 딱히 캠핑을 가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마흔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친구도 있었다. 누구는 벌써 학부형이 되었다. 학교 다닐 적 만난 친구들이 벌써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싶었다.

아이들과 물놀이하고, 다 같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각자 다르게 살아온 만큼 생각도 다르고 관심도 달랐다. 하지만, 오랜만에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친구들을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마음은 편안했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다. 아이들도 많았고 엄마들은 없었기 때문에, 그 많은 개구쟁이들(어른보다 아이가 많았다)을 아빠들이 돌봐야 했다. 게다가 나는 텐트도 없는 상태에서 딸과 함께 친구 텐트에 의지해야 했다. 내 공간이 아니라는 불편함에 친구의 코 고는 소리까지. 그때 나는 한 시간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피곤에 절어서 돌아온 일요일,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온종일 잠들어 있었다. 자도 자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일요일이라는 요일이 달력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일하느라 밤을 새도 이 정도 피로는 아니었다. ‘역시, 캠핑은 나랑 안 맞나?’ 싶었다. 하루가 더 지나도 여전히 몸의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보통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기 마련인데, 캠핑에서 생긴 피로는 마음까지 피로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부터였다. 캠핑을 가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에게 얘기해보았더니 단 1초도 망설임도 없이 가자고 답했다. 이전부터 캠핑 가자 노래를 부르던 아내였기에 거절한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곧바로 우리는 용품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정보를 찾고,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다음 달에 갚아야 할 카드 값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택배는 끊임없이 도착했고, 더 이상 둘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임시로 서재에 하나씩 쌓아두기로 했다. 그런데, 하나둘 쌓다 보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더 이상 이곳은 서재가 아니었다. 캠핑용품 창고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았다.

필요한 장비가 대부분 갖춰지고 사이트를 예약했다. 텐트는 한 번도 쳐본 적 없고 뭐가 필요한지 가늠도 안되었지만, 무작정 떠나보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 가족이 함께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어리바리했지만, 그럭저럭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어느덧 완성되어 있었다.


캠핑, 생각보다 할만한데?


캠핑장의 하루는 생각보다 바쁘다. 친구들과 함께 갔을 때는 뭘 해야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할 일이 없었다.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데우는 정도가 내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 장비로 우리 캠핑장을 직접 꾸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새 없었다. 텐트 치기, 텐트 꾸미기, 짐 정리, 불 피우기, 아이들 돌보기, 고기 굽기, 먹기, 설거지하기, 얘기하기, 술 마시기, 다시 불멍(불 보며 멍 때리기) 등,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빨리 흐른다. 공부할 때는 잘 안 가던 시간이, 게임하고 TV 볼 때는 금방 흐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술도 마셨겠다, 몸도 피곤하겠다, 텐트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물론, 바로 옆 텐트에서 심하게 코 고는 바람에 곧 깨버렸지만.

호텔을 잡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여행도 만만치 않다. 특별히 무얼 하지 않아도, 근육통에 시달리고 피로에 시달린다. 다녀온 다음날은 여독으로 멍하니 보낸다. 그런데, 캠핑에 비하면, 이런 여행은 휴양에 가깝다. 해는 따갑고, 날도 덥고, 씻기도 불편하고, 잠자리도 불편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해서 생각나고 또 가고 싶어 진다.


아직 취미라 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고작 한번 다녀왔을 뿐이다(다음 주에 또 예약했지만..). 캠핑이 우리 가족과 잘 맞는지 확신은 없다. 몇 번은 더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다 같이 용품을 고르고 캠핑장을 꾸고 대화하면서 함께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많아진다.

혼자만의 취미는 아무리 즐거워도 타인과 함께하기 어렵다. 오로지 자신만 즐길 뿐이다. 하지만, 어떤 취미를 누군가와 공유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낀다. 혼자 등산하는 것보단 동호회에서 등산하는 것이 재미있다. 글을 쓸 때도 혼자 쓰는 것보단, 글 쓰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게 낫다. 동기부여가 될 뿐 아니라,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여러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같이 쌓아가는 일이다. 함께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 먹고 불을 바라보며 얘기 나누는 그 일련의 활동이 뭐 대단하냐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별것 아닌 그 캠핑이 실제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주말에 누워만 있던 아빠를 일으켜 세우고, 서먹했던 딸과 아빠를 친하게 만들어 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 부부관계를 해소시키고, 원수 같았던 누나와 동생이 둘도 없는 사이로 변한다.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고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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