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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Nov 30. 2020

브런치는 부담스럽다

수백의 습작

브런치(brunch)는 부담스럽다. 블로그를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수십 명에게 읽힐 글이 대체 뭐라고 압박감에 시달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십중팔구는 글쓰기 재능이 미천한 탓이리라. 나머지 1에서 2는 브런치라는 공간 때문이다. 브런치는 가입만 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여타 블로그와는 다르다. 아무나 글을 발행할 수 없다. 브런치 팀의 어떤(?) 조건에 따라 선별된 ‘작가’만 글을 발행할 수 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읽어볼 수만 있을 뿐, 어떠한 글도 '발행'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런 진입장벽은 전반적인 글의 질을 향상한다. 광고, 성의 없는 글, 사진만 들입다 나열한 글,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을 필터링한다.


글쓰기 재주가 미천함에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묘한 압박은, 글을 더 잘 써야겠다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문장의 연결이 매끄러운지, 단어는 제대로 사용하는지, 적절한 표현인지 등. 네이버나 티스토리에서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것이 브런치에서는 유독 더 크게 눈에 띈다.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독자의 입장에서 읽고 또 읽어본다.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 하나 완성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 썼던 글은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다. 아니, 한 시간으로 충분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5시간도 모자란다. 물론, 소재를 찾고 글을 구성하고 문장을 토해내기 까지의 시간을 따져보면, 그보다 훨씬 길다. 보통 10시간 이상. 글 하나 쓰는데, 10시간 이상이라고?


일주일에 10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하루 한 시간의 여유는 사치다. 퇴근하고 아이가 잠든 뒤에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글을 쓰겠는가? 이미 글을 쓰겠다는 의지보다는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새벽은 어떨까? 글쎄. 나 같이 게으른 인간이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사실 몇 번은 시도해 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일찍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말을 이용한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가 아니라면, 보통 주말 중 하루를 글쓰기에 할애한다. 이마저도 와이프의 배려가 없었다면, 글쓰기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주말에 시간을 확보하긴 했는데, 문제는 쓰기다. 소재가 있고, 글의 구성을 생각해뒀더라도 쓰다 보면 막히는 일이 부지기수다. 머릿속으로 완성하고 한 번에 내려쓸 수 있는 ‘천재’ 작가라면 또 모르겠지만, 나 같은 범인(凡人)은 쓰면서 생각하고 쓰면서 정리한다. 정리가 안된 생각을 어떻게든 문장으로 만들어보려 분투한다. 비슷한 주제의 글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용할 만한 문장이 없는지 책도 뒤적거린다. 그러다 보면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별로 쓰지도 못한 채 자정을 맞이한다. 이때쯤 되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마감시각(월요일 오전)은 다가오는데, 결론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주말이 넘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발행해야 한다. 카페인을 삼키며 이 악물고 버텨 본다. 두시를 넘어 세시가 다가오면서 한계에 다다른다. 십 년만 젊었다면 또렷했을 정신은 이제 카페인을 들이부어도 깨어날 생각을 않는다. 피로로 혼미한 정신은 ‘이제 그만’을 외친다. 틀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만 쓰고 자자.




피카소는 ‘천재’ 화가로 불린다. 그의 그림 한 장은 수백억 이상에 거래된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화가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피카소라 답할 사람이 차고 넘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가만 보고 있자면 어딘가 아이의 그림을 닮았다. 원근감이나 입체감은 무시되고, 눈과 코와 입은 각자가 별개의 개체같이 보인다. 마치 아이가 낙서하듯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같아 보인다. 그래서 혹자는 피카소의 그림이 즉흥적이고 우연한 결과물이라 말한다. 떠오르는 대로, 생각한 대로 그렇게 그린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수백 장의 크로키가 발견되었는데, 하나같이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천재’인 줄만 알았던 화가에게서 ‘노력’이라는 연료가 발견된 순간이었다. 누군가 보기엔 즉흥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였던 작품이, 사실은 수많은 연습과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던 화가의 재능이 사실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었다.


대표작 <게르니카>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들


만약, 피카소에게 타고난 재능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게르니카>와 <아비뇽의 처녀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작품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노력과 반복과 스스로를 깨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는 법이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을 보고 ‘천재’라는 단어로 간단히 압축해버린다. 마치 그 사람의 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취급하며,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긋는다. '당신은 위대하게 태어났고, 나는 평범하게 태어났어. 우리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고는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치부하고 포기하며 도전하지 않는다. 재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 말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재능이 없어서 성취도 없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글쓰기 시작한 지 고작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걸음마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에게 뛰라고 강요한다. 본인의 상태와 수준은 생각지 않은 채 ‘잘 쓰고 싶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만 키워왔다. 성과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조급해하며 스스로를 옥죄었다. 좋아요와 구독자 수가 곧 재능이라 믿었고 그 숫자에만 집착했다.


브런치라는 공간, 작가라는 타이틀, 재능에 대한 조급함은 나의 글쓰기에 부담을 지웠다.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발행의 기준을 만들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도록 강제했다. 그러다 보니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30분을 골똘히 생각하는가 한편,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하나의 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니 피로가 쌓이고 정신이 혼탁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지쳐갔다.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부담감을 떨쳐내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써도 되지 않을까? 꼭 완벽한 글을 만드려고 집착하기보다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습작이다. 그래, 습작이라고 생각하자. 이번에 쓰는 글은 다음에 쓸 더 나은 글을 위한 양분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수많은 습작을 만들어내자. 꾸준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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