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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Dec 21. 2020

솔직한 글쓰기

솔직함, 솔직하지 않음 그 사이 어딘가

에세이는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글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남들은 겪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까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에세이라는 장르다. 경험이 바탕이 되는 글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신을 노출한다. 내가 겪은 일, 내 주변, 내 생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상까지. 나의 모든 것이 곧 글의 소재가 된다. 특히 브런치 같은 온라인에 글을 쓰는 것은 공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힌다. 한 마디도 섞어 보지 못한 사람이 나를 알고, 내 주변을 알아간다. 내 과거를 알고, 시간에 따른 내 생각의 변화를 안다는 사실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그렇다 보니, 가끔은 글쓰기가 조심스럽다. 아니, 무섭다는 말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어디까지 나를 보여주고 드러내야 할지 선을 정하기가 어렵다. 드러내자니 용기가 부족하고, 감추자니 소재가 부족하다. 쓰긴 쓰는데, 도무지 제대로 쓰는 기분이 아니다. 그렇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자아와 감추고 싶어 하는 자아 사이에서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글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읽다가 지웠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만 축내다 보면, 산으로 날아가는 터무니없는 글 하나가 탄생한다. 나를 팔아서 글을 만드는 게 결국 에세이인데,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드니 쓰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평범한 것을 대범하게 만드는 필력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쥐뿔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억지로 꾸역꾸역 채워 넣는 것뿐이다.


내향적인 성격도 한몫한다. 아는 사람이 볼까 봐, 속마음을 들킬까 봐, 조금이라도 나를 감추고 겉모습만 보이는데 치중한다. 속에 있는 진짜 내 모습은 감춘 채,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겉모습만을 그린다. 진실되게 쓰기보다는 애써 꾸미려 든다. 나로 채워야 할 자리에 나는 빠져버리고, 나로 둔갑한 남들의 글이 대신 자리 잡는다. 누군가의 문장, 누군가의 스타일, 누군가의 생각으로 화면이 빼곡히 채워진다. 내 것은 귀퉁이 어딘가로 처박힌 채, 있는지 없는지 조차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나의 고유함은 점점 옅어져 가고, 내 글은 더 이상 내 글이 아니게 된다.




요즘 에세이 시장은 솔직함이 대세다. 어디에서든 솔직함을 강조한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있는 그대로가 좋고, 나는 이대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책이 에세이 시장을 뒤덮었다. 눈을 돌리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친구와 누나와 동생과 엄마의 솔직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솔직함이 무기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가 겪고 생각한 바를 가감 없이 쓸 수 있는 그런 글을 썼으면 좋겠다. 하지만 솔직한 이야기가 대세라 해서 아무 글이나 써도 된다는 건 아니다. 솔직함이라는 말 뒤에 숨어서 아무렇게나 내뱉는다고 사람들에게 읽히지는 않는다. 내면 깊숙한 곳 어딘가 감춰진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다 해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자기 고백은 자기 연민에 빠지게 만든다. 자신의 겪은 일과 고통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사람은 결국 주변을 힘들게 만들 뿐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 ‘Latte는 말이야’ 같은 말이 얼마나 듣는 사람을 지루하고 지치게 하는지,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의 일이라 하더라도, 공감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겪고 있으니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식의 글은 불편하다. 읽다가도 덮어버리고 싶다. 이런 글은 술에 취해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 또는 일기장에 끼적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글을 쓰는 것, 구체적으로 에세이를 쓰는 것은 자기를 얼마나 드러내고 감출지 줄다리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면 자기 연민에 빠질 것 같고, 조금이라도 덜 드러내면 지나치게 평범한 글이 될 것 같다. 나처럼 자신을 감추려고만 해도 곤란하지만, 대놓고 드러내려고만 해도 곤란한 건 매한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말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솔직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적절한 어딘가의 선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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