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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Dec 14. 2020

쉽게 씌어진 글

잘 '쓰고 싶다'면 계속 '써야 한다'

요즘 브런치 글을 읽다 보면, 알맹이가 툭하고 빠져있는 글이 많은 것 같다. 겉만 번지르하게 포장되어 있고, 속을 까 보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분명, 하얀 페이지에 활자는 빼곡히 채워져 있는데, 하고자 하는 말은 정작 보이지 않는다. 하고픈 말도 없으면서 비슷한 말만 반복한다. 제목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주제로 비슷한 글을 재생산한다.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여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남의 문장을 마구잡이로 가져와 글의 품질을 높이려 한다. 어떻게든 글 개수를 채워 좋아요와 구독자 수만 늘리려 든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그럴듯한 제목에 낚인 기분이다. 뭐하로 읽었을까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마음 한쪽이 은근히 불편해진다. 내가 종종 이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의 시작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마음의 치유를 위해 쓰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책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기록을 위해 쓰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자기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시작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모두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마냥 즐겁다. 소재도 풍부하고 하나씩 채워나가는 재미가 있다. 하찮은 글임에도 사람들이 반응해주는 게 마냥 신기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 쓰는 것이 힘든 시기가 온다. 쓰긴 써야겠는데, 소재는 영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소재를 정했는데, 내용을 채워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분량을 스스로 정했지만, 언제 이 긴 글을 다 채울까 싶다. 막막하다. 그러다 보면, 의미도 없는 문장을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이게 뭔가 싶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한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어울리지도 않는 타인의 문장으로  자신의 글을 메꿔버린다.


처음에는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즐겁지 않다. ‘쓰고 싶다’가 ‘써야 한다’로 바뀌는 순간부터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며 쓰기 싫어졌다. 마감 직전까지 한 글자도 쓰지 않다가 당일이 되어서야 밀린 숙제를 처리하듯 부랴부랴 쓰기 시작한다. 급하게 쓰다 보니 허점이 많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이리 튀었다 저리로 튄다. 일관성이 없다. 부족한 논리에 여기저기 비슷한 글을 찾아 남의 것을 훔친다. 내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남의 생각과 말로 가득 차있다. 내 글을 쓰는 건지, 남의 글을 짜집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쓰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싸지르는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렇게 꾸역꾸역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걸까? 찬물로 세수를 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커피를 홀짝이면서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계속 쓰기 위함이 아닐까.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다음에 쓰는 글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다음에는 더 잘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시인은 시가 쉽게 쓰였다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으리라. 어려운 현실에서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기에 저리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해서 시인이 시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즉, 지금 쓰는 글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일(쓰기)을 하겠다는 시인의 반성과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글이든, 한 편의 글이 탄생하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반성과 개선 의지 없는 글은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재생산한다. 개선 없는 반복은 스스로를 도태시켜 매너리즘에 빠뜨린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겠다고 오늘도 몽롱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는다. 아마도 글이 ’쉽게’ 쓰이는 날은 오지 않으리라. 다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오늘도 글 하나를 간신히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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