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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Dec 28. 2020

치열한 글쓰기, 치열한 삶

속도에 맞는 글쓰기

브런치에는   글쓰기를 목표로 글 쓰는 작가님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매일 1개씩, 한 달 동안 꾸준히 글을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매일 글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매일 글을 발행하겠다니. 웬만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 종일 글쓰기에 정신을 쏟아야 하고, 쓰는데 미쳐 있어야 한다. 처음 며칠은 버틸만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다. 소재는 고갈되고 처리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마구 나타난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일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하기 싫던 것들이 하고 싶어 진다. 학생들이 유독 시험기간만 되면 딴짓을 재밌어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나는 일주일에 글 하나 쓰기도 벅차다. 닷새를 고민하고 이틀을 쏟아야 겨우 하나 나올까 말까.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는 않다. 바쁘긴 하지만 시간 외 근무도 하지 않고, 10시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한다. 이후는 자유다. 출퇴근 이동 시간이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욱 여유롭다. 물론 아이와 놀아줘야 하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 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평일에 좀 써 놓으면 주말이 편하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는 법은 없다. 머릿속으로만 계속 되뇔 뿐, 내일 쓰면 되겠거니 하며 침대에 몸을 뉘인다.

그래서 늘 주말이 괴롭다. 남들은 휴식하며 재충전하는 동안, 나는 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싸맨다. 아이와 놀아주기는 커녕, 글 쓰는 핑계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다. 소재를 찾고 글을 쓰느라 뇌세포를 풀가동한다. 그렇지 않아도 스치듯 지나가는 게 주말인데, 내 주말은 남들보다 더 빨리 흘러간다. 보통이 2배속이라면, 내겐 4배속쯤 될까. 늘 시간은 부족하고, 늘 쫓기는 기분이다.

시간도 없는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니, 모르겠다 싶어 아무렇게나 쓰기 시작한다. 쓰면서 떠올리고 쓰면서 정리한다. 어떨 때는 몇 번이고 소재를 바꾼다. 써놓고도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또다시 쓴다. 눈은 감기고, 머리가 멍해진다. 허리는 아파오고, 현기증에 어지럽다.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커피와 핫식스를 몸에 부어 넣는다. 평생을 벼락치기로 버텨왔는데, 글쓰기라고 뭐가 다를까. 오늘도 벼락치기로 글 하나를 토해낸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단 한 번도 치열하게 살아온 적 없었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더라도 쉽게 싫증 내었다. 조금만 어려워도 불편해했고, 쉽게 포기해버렸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모두 감당할 만큼 성실하지 못했다. 원래 내 일이 아니라서 그만둔 것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없는 채, 남들처럼 살고 남들처럼 움직였다. 적당히 성취하고 적당히 노력했다. 잠들기 전에는 치열하지 못함을 질책하면서도, 아침이면 곧 잊어버렸다.

그런데, 치열하게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몸을 혹사시키면 치열한 걸까? 주변을 돌보지 않으며 오로지 성공을 위해 노력하면 치열한 삶일까? 남들보다 빠르게 살면 치열한 걸까? 치열함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사전적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치열하다(熾烈--)
: 기세나 세력 따위가 불길같이 맹렬하다.


삶이 매 순간 이럴 수 있을까? 언제나 불길같이 맹렬하게만 살 수 있을까? 만약 이런 게 치열한 삶이라면, 차라리 나는 게으르고 말겠다. 불같이 살다 산화되어 한 줌의 재가 될 바엔, 차라리 조금 느리게 사는 편을 택하겠다. 현대인은 모두 치열함에 중독된 것만 같다. 달리 말하면, 열정 또는 성실함 같은 것. 도대체가 느린 꼴을 못 본다. 조금이라도 느리면, 뒤쳐진다 생각하고 게으르다 생각한다. 일처리가 빠르면 능력 있고, 그렇지 않으면 무능력하다 여긴다. 10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20의 속도를 강요한다. 강요받은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개인은 결국 도태되고 만다


느린 것이 결코 능력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생각한다. 충분히 20으로 달릴 수 있는데, 고작 10으로 달리는 중이라 여긴다. 열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더 빠른 속도를 내려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넘어진다.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나 보지만, 속도는 늘 제자리다.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다. 거듭 도전해 보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반복된 실패가 결국 좌절을 불러온다. 이제는 일어날 기력조차 사라져 포기하고 만다.

사람에게는 각자에 맞는 속도가 있다. 말을 빨리 배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남들보다 늦은 아이도 있다. 빨리 말하기 시작했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빠르게 일처리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리지만 꼼꼼히 일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하루에 글 하나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주일에 하나가 충분한 사람도 있다.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자신의 속도를 넘어서는 것은 부담이다. 버티고 버텨내며 목표를 완수한다 하더라도 몸은 지치고 지쳐 흥미를 잃기 쉽다.


속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삶의 목적과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느리더라도 자신의 리듬을 찾고 그 리듬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걸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느리지만 꾸준한 거북이가 자신보다 훨씬 빠른 토끼를 이기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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