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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Feb 28. 2021

작지만,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열정의 이면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리 열정적인 삶을 살 것 같지는 않다. 지금껏 학업, 일, 그 외 어떤 분야에도 만족할 만한 성취는 이루지 못했다. 학창 시절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더 높은 성적을 받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학점도 딱 적당히.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적당한 수준을 유지했다. 열정이 있는가 하면 곧 식어버렸고, 항상 새로운 것에 눈독 들였다. 호기심은 많았지만, 성취를 위한 실행력은 떨어졌다. 내 열정은 마치 불붙은 종이 같았다. 아주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재가 되어버리는, 그런 종이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무언가 성취를 이루고 싶다면 쏟아부어야 한다고. 학업이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또 다른 어떤 분야든. 성공하려면 남들과 똑같아서는 힘들다 말한다. 남들이 7시간씩 잔다면 5시간만 자야 하고, 휴일에도 마음 놓고 쉬어서는 곤란하다. 졸리면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부어 넣고, 두통이 있으면 아스피린을 씹어 먹으며 버텨야 한다. 당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나도 그럭저럭 동의하는 편이다. 적당히 해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탁월한 재능(재능도 정의하기 나름이지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재능이 없다. 비범함이란 일부 소수에게만 허용된 자원일 뿐,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노력과 열정으로 그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한다.

열정은 마치 마법 같다. 모든 것을 이뤄 줄 수 있는 마법의 단어처럼 보인다. 열정만 있다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열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인간은 몸은 강철이 아니다. 수분에 몇 가지 양분을 포함한 유기체일 뿐이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쓰면 쓸수록 점점 약해진다. 열정이라는 말로 잠시 몸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를 견디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동기 부여해봤자 한계에 부딪힌 몸은 정신을 서서히 잠식해 간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두통과 염증이 온몸을 뒤덮는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도 아픈 몸 앞에서는 무기력한 법이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몸은 하나고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우리가 뇌의 일부만 사용한다는 것은 이론일 뿐, 몸의 한계를 넘어서면 고장 나기 마련이다. 열정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생성되어야 한다. 강요된 열정으로 성장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지속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 어떤 성장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열정은 성취, 적절한 보상, 건강한 루틴이 잘 조화된 신체에서만 싹트는 법이다.

글쓰기를 생각해보자. ‘한 달간 매일 글쓰기’에 동참하는 사람과, 일주일에 하나씩 글 쓰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글 하나 작성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소재 찾기부터 퇴고까지 생각해보면 최소 6시간은 투자해야 한다(내 경우,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데, 매일 써야 하는 사람이 하루에 6시간 투자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글 쓰는 게 업이거나 본업이 없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은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에는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어가겠지만, 일 주를 버티고 이 주를 버티다 보면 서서히 한계가 찾아온다. 점점 체력은 바닥나고, 소재는 고갈되어 간다. 어떻게든 한 달을 버틴다 하더라도, 이후 완전히 방전되어 아예 글쓰기를 포기하고 만다.

반면에 일주일에 글 하나를 쓰는 사람은 어떨까? 일주일에 6시간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하루 1시간 정도만 확보하더라도 평일이면 충분하다. 부족한 시간은 주말을 이용한다. 마감 직전까지 미루고 미룬다면 부담감은 여전하겠지만, 적절히 계획하고 시간 배분만 잘한다면 지속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이어갈까? 매일 글 쓰는 사람일까? 아니면 일주일에 하나만 쓰는 사람일까? 확률적으로 후자의 경우가 많지 않을까? 본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쪼개는 것은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무리한 목표로 시작한 계획은, 본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 달만 버티자. 버티고 나면 뭔가 달라지겠지’ 같은 생각으로 열정을 쏟아봤자, 남는 것은 방전된 체력뿐이다.

무언가 이루기 위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때에는 더욱 그렇다. 며칠 혹은 몇 달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성과 없이 흐르는 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서서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판단력은 흐려져 간다. 평상 시라면 무리 없는 일이라도 쫓기는 마음으로는 제대도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은 작게 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도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가 적당하다. 처음부터 쏟아붓기보다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작아도 천천히 지속할 수 있는 속도로 시작해야 지치는 법이 없다. 내 일상을 뒤집어 놓는 정도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적당함의 선을 찾기가 어렵다면, 평생 할 수 있을지를 떠올려보자. 가능할 것 같다면 OK, 평생은 무리다 싶으면 강도 조절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열정은 강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피드백, 성과, 보상이 주어져야 열정 또한 자라나는 법이다. 욕심 때문에 처음부터 무리해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일상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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