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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ug 30. 2021

비우고, 채우자

집, 특히 창고 겸 서재로 사용하는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새롭게 공간을 바꾸고 싶어졌다. 건축을 공부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공간이 일상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믿는다. 변화 없는 지루함을 못 견디는 성격도 한몫한다. 그래서인지, 공간을 바꾸는 것은 내게는 연례행사 같은 일이다.


이건 버리고, 이건 배치를 바꿔야겠다. 머릿속으로 도면을 그려보았다. 가구를 이리저리 바꾼 뒤, 그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서너 평에 불과한 작은 방이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가구 하나 바꿔도 분위기가 새로워진다. 조금의 변화만으로도 지루한 일상에 충분한 자극이 된다. 테이블은 하나만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좁은 방에 기다란 테이블을 두 개 쓰고 있다 보니 공간이 부족했다. 채우는 것만큼 비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공간의 쓰임이란 채워짐과 비워짐이 조화를 이룰 때 극대화되는 법이니까.


비울 대상을 물색하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 시선이 닿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책을 가지고 있을까?


예전부터 책에 파묻혀 사는 다독가는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면 많이 읽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 자체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게 서점과 헌책방은 놀이터와 다름없었다. 어떤 책을 살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간 날 때마다 혼자 헌책방을 돌아다녔다(지금은 알라딘 같은 대형 중고서점에 밀려났지만, 15년 전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작은 중고서점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놀이터 모래에 동전을 줍는 어린아이 마냥 책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었다. 헌책방을 나설 때면 언제나 양손에 책이 한가득이었다. ‘언젠간 읽겠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읽어야지’ 같은 마음이 책을 사모으는 내게 면죄부를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져온 수많은 책들은 책꽂이에 꽂힌 채로 먼지만 수북이 쌓여갈 뿐이었다.


나는 책을 정말 좋아했을까?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왜 그렇게 사모았을까? 나는 왜 탐서주의자가 되었을까?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트 에코의 서재나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 같이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원했던 걸까? 책장의 책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곁에 있는 책이 나를 말해준다’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 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장을 하나 둘 채워나갔다. 소화하지도 못할 텍스트로 가득한 책을 선뜻 구매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전문 서적에 집착하게 되었다.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면, 집에 초대한 누군가에게 환심을 사고 싶어 그리 책을 모았을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나는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지적인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책장에는 10년 넘게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으로 가득했다. 대학시절 보았던 건축 관련 서적, 이해 불가능의 철학 서적, 프로그래밍을 시작할 때 보던 책까지. 언젠가 보겠지 생각하며 사 모았던 오래된 책들은 이제 빛이 바랜 채 누렇게 변해 있었다. 책을 샀을 때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그 당시에 타오르던 지적 욕망까지, 변해버린 책의 색깔만큼이나 그 모든 것이 희미해진 것만 같았다.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야’, ‘언젠가는 읽어보겠지’, ‘우리 딸이 나중에 읽을지도 몰라’ 같은 아주 적은 가능성에 기대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이고 살았다. 그만둔 건축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과거에 되고 싶었던 모습에 대한 후회일까? 아니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과거의 미련이라도 가지고 있어야만 했던 걸까? ‘이건 다시 읽지 않을 테니 버리자’, ‘아니야. 언젠가 읽을 날이 올 거야’라며 버리자는 자아와 버리지 말자는 자아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책을 뺐다 꽂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다.


책장은 마치 한 사람의 머릿속 같다. 정해진 뇌 용량으로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 어렵다. 오랜 기억은 서랍 속에 넣어두고, 꼭 기억해야 할 것들만 꺼내기 쉬운 곳에 배치한다. 책장도 마찬가지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버리지 못한 책으로 가득 찬 책장에는 새로운 책을 채울 수 없다. 시대가 바뀌면 그에 걸맞은 지식 또한 변하는 법이다. 오래된 책만 짊어진 채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과거의 선택과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하며 후회만 하는 삶과 같다.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묵혀진 미련, 오랜 꿈, 그리고 과거의 아쉬움을 책 사이사이에 끼워 넣자. 그리고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버리자.


이제, 비워진 공간을 현실의 나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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