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 May 10. 2021

서른에 나는, 직업을 바꿨다

직업을 바꿔 본 경험으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서른에 나는, 직업을 바꿨다.


건축가에서 개발자가 되었다. 연관성이라고는 단 1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딱히 개발자를 꿈꿔왔던 것도 아니었다. 내 꿈은 화가에서 천문학자로, 그리고 건축가로 이어졌다. 개발자는 내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공학계열임에도 C언어조차 배우지 않는 건축과를 나왔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베이스는 제로였다. 고등학교 때 취미 삼아 따놓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쳐준다면 모를까. 제로베이스에서 수개월의 시간으론 어림도 없었다. 시스템과 동작 방식을 이해함과 동시에 언어도 익혀야 했다. 마치 ABC도 모르는 아이가 영어를 처음 배우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습득력이 빠르더라도 몇 개월 만에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몇 가지 교육기관을 거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에 시달렸다. 학창 시절 수학이나 과학에 자신 있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다들 이해하는데, 혼자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같이 배우던 13살 꼬마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사람이었던가?’ 같은 의문에 하루 종일 시달렸다. 매일매일 조금씩 자존감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건축계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잔병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호기롭게 뛰쳐나왔던 그곳으로 축 처진 어깨를 들이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텼다. 버티고 버텨서 끝을 봐야 할 것 같았다.




직업을 바꾼 것이 그리 특별한 경험은 아니다. 브런치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마음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특별하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지만, 내가 직업을 바꾸면서 느낀 몇 가지 긍정적 사실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  조급함 없는 끈기, keep going


어떤 일을 하더라도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 주식시장에서도 버티는 자가 돈을 번다. 쉬지 않고 글 쓰는 사람이 책을 내고, 포기하지 않고 운동하는 사람이 몸짱이 된다. 그리고 영상을 계속 만들어 내는 유튜버가 결국 성공한다. 즉, 버티고 버티는 자만이 달콤한 성취를 얻는다.


대단한 통찰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 꾸준함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한다. 조금만 올라도 주식을 팔아버리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글쓰기를 게을리한다. 근육통과 스트레스로 운동을 거부하며, 구독자가 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상 찍기를 소홀히 한다. 욕심 때문이다. 빠르게 결과를 얻고 싶은 조급함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우리는 현재를 게을리하기 시작한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핑계를 만들어 낸다. 어떻게든 그만둘 이유를 찾아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끈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학습의 결과물이다. 노력과 끈기가 만들어낸 성취는 맛본 자만이 그 달콤함을 기억한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다음 경기에 다시 도전한다. 달리다 멈춰 선 사람은 경기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  지금의 일과 회사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뻔한 사실. 지금 하는 일은 전부가 아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회사라는 커다란 조직에서 하나의 부속품일 뿐, 그 이상의 어떠한 이유도 붙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부속품은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부속품의 역할을 다할 때까지 온몸을 바쳐 회사에 충성한다. 그러다가 언젠가 쓸모 없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그제야 자신이 부속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지금 하는 일과 다니는 직장에서 조금 뒤떨어진다고 인생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앞으로 나간다 해서 승리한 인생도 아니다. 외길에서 조금 더 앞서가려고 서로를 짓밟는 것만이 해답이 될 수 없다. 세상의 길은 앞으로만 향하고 있지 않다. 다만,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한 발자국만 옆으로 나와 눈을 돌려보면, 수많은 다른 길이 바로 옆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업을 바꾸는 유연함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평균 5개의 직업을 가질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코, 과정 되거나 틀린 말이 아니다. 평균 100세를 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단 하나의 직업만 가져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25~30살에 취직해서 50대에 퇴직을 해야 한다면, 대체 남은 5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국민연금만 믿을 수는 없다.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50대에 은퇴를 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직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니, 반드시 다음 직업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미래를 단 하나의 회사에만 의탁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갑작스러운 은퇴가 당신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회사는 당신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 필요하다면 당신을 내보낼 수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를 불안한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음 인생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직업을 바꿔 본 경험이 나를 바꿔 놓았다. 게으르고 싫증만 내던 사람에게 버티는 법을 알게 해 주었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선물해주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터널 속을 지나는 것처럼 오직 앞으로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면, 잠시 멈춰 다른 길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자. 생각보다 많은 길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는 취미로 다니면 안 되는 겁니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