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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n 06. 2021

월급 예찬 - 월급에 중독된 당신에게

25일 오전, 어김없이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보노님 계좌에 XXX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월급이다. 이번 달에도 월급이 들어왔다. 한 달간 내 시간과 정신력을 쏟아부은 대가로 충분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밀리지 않는 월급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월급이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그리 오래 머물 계획은 아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처럼, 며칠이면 내 계좌는 다시 0에 수렴할 것이다. 우선, 각종 대출 이자와 자동차 할부금을 갚는다. 나머지 금액으로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고, 와이프에게 생활비를 부친다. 특별할 것도, 특이할 만한 일도 없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월급의 쓰임은 모두 예전에 정해져 있었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 그저 갚아야 할 빚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적자다. 아무리 계획하고 소비하더라도, 인생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난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지출이 발생한다. 월급은 늘지 않는데, 내야 할 세금만 계속해서 늘어난다. 계좌에 돈이 쌓일 겨를이 없다.  


적자를 메워야 한다. 이번에도 주식 계좌를 털어야겠다. 어렵게 불렸지만, 당장 급한 불은 꺼야 하니 어쩔 수 없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종목을 팔아야 할까.




회사에 몸 담고 있다면, 누구나 월급을 받는다. 한 달간 개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다. 그렇게 시간과 맞바꾼 돈으로 음식을 먹고, 집세를 내고, 옷을 사 입는다. 월급이 많다면 좀 더 비싼 음식, 더 큰 집, 더 비싼 브랜드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욕망의 크기만 조금 커졌을 뿐, 인생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월급은 우리 삶을 안정적으로 만든다.

안정적인 삶은, 특별한 굴곡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 변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며,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다. 정해진 날에 정해진 돈을 받고, 정해진 만큼 소비할 뿐이다. 아주 약간의  예외도 거부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까지 기계적으로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 그 어떤 도전도, 그 어떤 일탈도 허용치 않는다.


월급이 주는 안정감은 마치 중독과 같다.

과한 업무 스트레스와 상사의 괴롭힘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 하지만,  달에 한번 돌아오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하기에는,  맛은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그렇게 서서히 중독되어간다. 소비하고 월급 받고,  소비하고 월급을 받는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무한의 쳇바퀴를 돌린다. 월급은 중독이다. 담배나 술보다 강력하며, 마약에 견줄 만큼 치명적이다.


그러나 월급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임에도, 사람들은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매월 25일이면 똑같은 돈이 통장에 들어올 것처럼 생각한다. 관계도 영원할  같고, 사랑도 영원할 것같이 행동한다. 심지어 죽음마저도 영원히 오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무엇이든 끝이 기다리고 있다. 관계에도, 사랑에도, 심지어 삶에도 반드시 끝은 온다.


월급도 마찬가지다. 평생 월급을 받을  있다면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회사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온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앖다. 병을 얻어 일할  없는 상태가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을지도 모른다. 회사는 효율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생각하면 언제든지 직원들을 내보낼  있다. 100세를 살아야 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보낼  있는 시간은 고작 20 정도다.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장이라도 길어야 30년에 불과하다. 20~30년짜리 인생을 위해, 16(또는  이상) 공부한 시간이 아까울 만큼 짧은 기간이다. 우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오랜 기간을 공부에 투자했을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 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 -


월급의 달콤함이야 이미 맛볼 대로 맛보았다. 그러나 월급의 안정감에 기대기에는 앞으로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끝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기보다는,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 끝을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월급 받는 대로 살기보다는,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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