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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n 14. 2021

그래도 너는 대기업 다니잖아!!


“그래도 너는 결혼하고 애도 있잖아!!”

“그래도 너는 차도 있고 집도 있잖아!!”

“그래도 너는 취직이라도 했잖아!!”

“그래도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잖아!!”

“그래도 너는 좋은 학교 다니잖아!!”

“그래도 너는 대기업 다니잖아!!”


‘그래도 너는’으로 시작하는 말이 참 많다. 누군가 자신의 불행함을 토로할 때, 우울함을 호소할 때, 괴로움에 몸서리칠 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래도 너는’을 시전 한다.


나는 이 말이 참 불편하다. 내 불안과 고통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가진 것에 감사하라니. 위로인지 충고인지, 참으로 헷갈린다. 


최근, 사내 괴롭힘으로 세상을 등진 어느 네이버 직원의 소식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괴롭힘, 성희롱, 과도한 업무 같은 사건은 언론 보도만 없을 뿐,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IT업계에서, 게다가 대한민국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에서 발생한 사건이기에 충격의 강도가 더욱 컸던 것 같다.


다음 날, 회사 곳곳이 술렁이고 있었다. 모두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마다  그 사건을 화재로 삼고 있었다. 한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그때, 어딘가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이버에 다니면서 왜 그랬을까요?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에요?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갔지만, 이 말을 듣고선 그만 귀를 닫아 버렸다. 맞는 말이다. 관두면 된다. 직장 상사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받는 다면 조직에서 떠나면 해결된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닐까? 뻔히 쉬운 해결책이 있는데,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언제나 타인의 행동과 결정에 스스로를 대입한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등.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매끄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 믿는다. 무거운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은 배제한 채, 오직 표면적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군다. 그런데 막상 개인의 문제가 되면, 모든 것이 희대의 난제로 탈바꿈한다. 마치, 연애 상담은 끝장나게 잘하면서, 자신의 연애에서는 언제나 실패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세상 모든 일이 해결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있을까?’

‘왜 저 사람은 맞서지 못했을까?’

‘왜 저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타인이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당사자가 느끼는 불안, 고통, 우울은 당사자의 일일 뿐,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온전히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피가 섞인 가족이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버에 다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곧 당사자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네이버에 직원 모두가 행복할리도 없다. 개중에는 복에 겨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이 재미없어서 무기력한 사람, 옆 동료보다 낮은 연봉에 분노한 사람, 또 누군가는 과도한 업무 때문에 고통받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돈이나 직장 같은 현실적 문제가 아닌, 인정이나 사랑같이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때로는 아주 작은 결핍(또는 욕망) 하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비대해진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 같이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가진 것’으로만 쉽게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타인의 심리나 불안, 스트레스는 고려하지 않은 채, 돈과 학위, 회사 같은 것들만 보고선 그들의 행복지수를 재단한다. '그래도 너는’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진 것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있는 만큼, 또 다른 어떤 것에 반드시 결핍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기울어지지 않는 저울과 비슷하다. 한쪽 그릇에 뭔가를 담으면, 마찬가지로 반대편 그릇도 계속 쌓여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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