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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l 11. 2021

달리는 차 안에서의 특별한 습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의 행복

나는 차 안에서만 가진 특별한 습관이 있다. 

앞에서 달리는 차의 번호판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지하주차장에 빼곡하게 주차된 차의 번호판이나, 걸어가며 스쳐가는 차의 번호판은 살피지 않는다. 오로지 차 안에서만 발현된다. 운전할 때도,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도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창 밖에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번호판에 시선을 고정한다.


정확히는 차량 번호판의 숫자에 초점을 맞춘다. 뒤의 4자리를 더했을 때 그 합이 30을 넘기는지, 또는 용도를 뜻하는 앞자리 2개를 더해 6개(또는 7개)의 합이 50이 넘거나 10 이하인지를 확인한다.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계산해봐야겠지만, 네 자리 합이 30이 넘는 경우는 경험상 대략 2~3% 정도 되는 것 같다. 즉, 50개의 번호판을 관찰하면, 그중 하나가 이 조건을 만족한다. 게다가 50 이상, 10 이하는 더욱 확률이 낮다. 지금껏 발견한 차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

(어렸을 적 수학은 참 잘했는데, 이젠 이런 확률을 어떻게 구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은 걸 보니,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 같다. 아마, 본격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던 초등학교 저학년쯤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내겐, 차 안은 그리 흥미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차에 울려 퍼지는 트로트 노랫소리나 누군지도 모를 DJ의 지루한 음성은 아이에게 소음일 뿐이었다. 극심한 멀미에 무언가를 읽을 수도 없었다.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창밖에는 늘 많은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당시 여느 남자아이들과 달리 차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대신 숫자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는 차에 달린 번호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의 번호판은 지루함으로 가득 찬 차 안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한창 산수(요즘은 수학이었던가?)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숫자를 보고 합을 구하는 것은 나름의 놀이가 되었다. 아이는 차를 타는 동안 번호판이 보이는 족족 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지루함은 사라졌다. 하지만, 덧셈은 점점 쉬워졌고, 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다. 바로 합이 30이 넘는 번호판을 찾자는 것. 10 이하(4자리)나 20 이상은 흔했다. 그러나 30이 넘는 차는 잘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제 더하는 재미에 찾는 재미까지 더해지자, 번호판 구경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이제 차를 탈 때면,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보이는 번호판이란 번호판은 모두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번호판은 아무것도 아니다.

번호판의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숫자가 좋으면 거래가 된다고 들었지만..). 용도와 차를 구분하기 위한 등록 번호에 불과하다. 합이 30이 넘거나 합이 10보다 작다고 해서 그 차가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아이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규칙이었다. 그럼에도 30이 넘는 번호판을 발견하는 순간, 아이는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칭찬을 받은 것도, 뭔가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지루함을 이기고자 만들어낸 습관이 스스로에게 행복을 선물한 것이었다.


행복은 값비싼 물질과 커다란 성취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기거나, 연봉이 많이 오르거나, 로또에 당첨된다면 물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일생에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우리 삶은 비슷한 일의 연속이다. 특별한 일만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믿고 산다면, 그것은 마치 언제 나올지 모를 오아시스를 기다리며 사막을 걷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우리 삶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지탱된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아이의 맑은 웃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친구와의 잡담 같은 것 말이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사막의 오아시스보다는, 매일 지나는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예쁜 꽃 한 송이가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한다. 여자 친구가 없다고, 연봉이 낮다고, 주식이 떨어졌다고 스스로를 불행하다 낙인 하지 말자. 숫자 합이 30이 넘는 번호판을 발견한 것만으로 어떤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은 우리 주변에 늘 함께 있다. 단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든 당신이 원한다면, 그 행복은 당신 곁으로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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