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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Oct 17. 2021

오늘 뭐 쓰지?

소재 발견의 어려움


오늘 뭐 쓰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이 아닐까? 정기적으로 글을 발행한다면 매번 할지도 모른다.


사실 글쓰기의 절반은 소재 찾기에 있다. 그만큼 소재를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일이 마감인데 소재조차 정하지 못했다면? 책상 앞에서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며 머리만 쥐어뜯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의 재료를 찾지 못해 글쓰기를 그만둔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쓸만하다. 의욕이 충만할 뿐 아니라, 쓸 거리도 많다. 어린 시절, 과거의 여행, 만났던 사람들, 회사생활 등 조금만 주위를 관찰해보면 소재가 넘쳐난다. 이 많은 소재를 언제 다 쓸까 싶다. 일주일에 글 하나쯤 쓰는 거야 별일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깨닫는다.


소재가 없다


글이 쌓이는 속도와 남은 소재는 서로 반비례한다. 공간에 글이 하나씩 채워질수록 머릿속의 소재가 하나씩 사라져 간다. 마치 개수가 정해진 상자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 먹는  같다.  꺼내면  비어서  이상   없게 되는 것처럼.


무슨 소리? 난 소재가 넘쳐나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축복받았다. 타고난 작가 체질이다. 자리에 앉아마자 기계처럼 2,000자를 뚝딱 써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은 소재 고갈에 고통받는다. 온갖 잡다한 정보가 뒤섞인 머릿속을 헤집어보아도, 딱히 건질만한 게 없다.


나도 소재 고갈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매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며칠간 고민하고, 마감 직전이 되어야 발행하기 급급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지속적 글쓰기를 통해 소재를 찾는데 나름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 반복되는 소재 사용

우리는 매일 변한다. 새롭게 받아들인 정보가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의 사고를 뒤바꿔놓는다. 아무리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나는 사람과 읽는 책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점이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소재라도 1년 전 글과 지금의 글은 다르다. 관점이 변했기 때문이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 여겨도 틀리지 않는다. 1년 전으로 갈 필요도 없다. 어제의 나도, 10분 전의 나도 지금의 나와는 전혀 딴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쓰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반복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그동안 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쓴 글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아무리 꼼꼼히 잘 읽어주는 독자라 할지라도 작가만큼은 아니다. ‘이 작가, 1년 전에 썼던 소재 같은데??’라고 그 누구도 묻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거부감이 일 뿐이다. 이미 썼던 글이라는 부담감을 떨쳐내자. 사실 많은 유명 작가들조차 같은 소재를 여러 번 활용한다.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낼 뿐이다.



| 카테고리화

글의 분류를 나눠보는 것은 소재 찾기에 큰 도움이 된다. 막연한 글이 아니라 일관된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면 소재 찾기가 한결 편안해진다.


예를 들어 주식을 주제로 쓰기로 정했다 치자. 매일의 시황, 섹터와 개별 기업의 분석, 경제 용어, 경제지표와 주가의 상관관계, 매매 기법 등 소재가 무한한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카테고리를 좁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소재를 찾다 보니 오히려 더 헤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무한한 땅보다 정해진 땅에 집을 설계하는 것이 수월한 것과 비슷하다.



| 특별해지지 않기

읽히는 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재밌거나, 성실하거나, 특별한 소재 거나.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가졌다면 쉽게 실패하지 않는다. 내 글은 그리 재밌지도 않고, 문장도 평범하다. 꾸준히 쓰고 있지만, 성실함이 주목받을 만큼은 아니다. 매일 일 년 동안 썼다면 몰라도, 일주일에 하나로는 그리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특별한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한 소재라 함은, 쉽게 할 수 없거나 흔하게 접하기 어려운 경험을 말한다. 이를테면, 종군기자, 우주비행사, 전직 대통령, 오지탐험가 같은 사람의 경험은 특별하다.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재의 글은 수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쉽게 주목받는다.


그러나 특별함은 한계가 있다. 특별함의 정도와 기간은 무관하다. 언젠가는 바닥이 드러난다. 그래서 경험에 의지하는 글쓰기 역시 지속하기는 어렵다.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권의 책은 될 수 없다. 반드시 특별해야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자.


‘나는 뭐 하나 특별할 게 없는데 내 글을 읽어줄까요?’


소재가 특별해야만 특별한 글이 아니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읽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특별함이 좌우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함은 쓰는 사람이 아닌 독자의 몫이다.



| 관찰하기, 삐딱하게 바라보기

사실 소재는 무한하다. 다만, 우리의 사고에 한계가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 아침에 눈을 떠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심지어 꿈속의 몽환적인 이미지까지 모두 글로 표현할 수 있다.


관찰이 필요하다. 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늘 보는 것이라 하더라도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때로는 조금 삐딱하게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이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몇 년 전, 비슷한 글을 어디선가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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