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을까?
한참 글을 쓰는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마치, 한참 회사를 다니다 삶의 목적을 고민하는 질풍노도의 직장인 같았다.
20대부터 ‘글쓰기’는 줄곧 내 마음 한 편의 화두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써야만 할 것만 같았다. 딱히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글을 써야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블로그를 시도했고, 또 그만두었다. 늘 그렇듯 충만한 의욕과 함께 시작했다. 블로그를 만들고, 꾸미고, 스킨을 고르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작 쓰기는 뒷전이었다. 마지못해 쓴 글은 성에 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소재는 점점 고갈되었다. 글 한편을 ‘완성’ 시키는 일에 늘 녹초가 되었다.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위해 강제적 동기가 필요했다. 혼자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 계속 쓸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해주었다. 효과는 있었다. 느슨해지고, 게을러지고, 핑곗거리가 늘어나도 책임감 하나로 버텨냈다. 커피를 들이붓고 에너지 드링크를 삼키며 꾸역꾸역 타자를 두드렸다.
도대체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이제야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지쳤던 걸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슬럼프 같은 걸까? 써야 한다는 의무감은 여전한데, 쓰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희미해졌다. 책임감만 남은 글쓰기는 곧 스트레스가 되었고, 우선순위 뒤편으로 밀려 버렸다.
이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질문이다. 글을 왜 쓰는 걸까? 내가 쓰는 글의 본질이 무엇일까? 단번에 명확해지리라 믿지 않는다. 다만,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이어나가려면, 글 쓰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되는 슬럼프에 나가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좋아해서 쓰냐고 물어본다면, 그때그때 다르다 답할 수밖에 없다. 쓰는 것 자체에 어떤 만족감을 얻었던 적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다. 어떨 때는, 글쓰기가 도무지 내키지 않아서 오로지 책임감 하나로 겨우 쓴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한번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싫지만 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것을 견뎌야만 비로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글쓰기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전업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 또 하나는 보조적 수단으로써의 글쓰기다. 전자는, 글이 곧 직업이 되는 경우다. 책을 쓰고, 인세를 받고, 강연을 다니는 등, 수입을 얻기 위해 글을 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완성도가 뛰어나야 하고 사람들 마음에 닿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부분은 보조적 수단으로 글을 사용한다. 한물 간 용어지만, 파워블로거는 실용적 글쓰기로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제품을 홍보하고 맛집을 리뷰하는 등 글 자체보다는 소통의 수단으로써 문자를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완성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사진만 나열하고 사진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 블로그처럼 전문적 내용을 다루는 글도 보조적 수단의 하나라 볼 수 있다.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한다는 면에서 리뷰보다는 높은 완성도가 요구된다. 그러나 역시, 글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보조적 역할을 할 뿐이다.
내 글은 어떨까? 내 글은 어떤 목적으로 쓰이고 있을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 어떤 실용적 목적도 생각한 적 없었다. 돈이 될 거라는 것도, 다른 것을 보조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끌리는 데로, 생각나는 데로 그저 써내려 갈 뿐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글이 검색된다. 하나씩 클릭해보면, 대부분 자신을 위해 쓴다고 말한다. 사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글이라면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명확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쓰는 이유를 고민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의 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아마 글의 출발점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나로부터 소재를 발견한다. 자신의 생각, 철학, 관점, 경험 등 내면의 이야기를 글자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것이 조금씩 외부로 나오면서 점점 확장해간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 나를 위한 것이라면, 글을 씀으로 인해 어떤 내면의 변화를 감지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거나,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된다거나 같은 것같이. 그러나 지금껏 이렇다 할 마음의 변화를 느낀 적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깨닫지 못한 만큼 서서히 변해가는 중이라 그럴지도.
사실,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대한 목표와 비전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라도 글을 쓰다 보면 방향은 바뀌고 목표는 수정된다. 애초에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오히려 꾸준히 찾아와 ‘좋아요’를 날려주는 구독자님들과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딸아이의 응원 같은 것들 때문에 다음 또 다음의 글쓰기를 이어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오로지 과정뿐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무엇 때문에 쓰는 건지 답을 찾으려 머리 싸맬 필요가 없다. 힘들면, 쉬어가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