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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Dec 27. 2021

검정 터틀넥 입는다고 스티브 잡스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재택근무로 외출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음식을 사거나 산책을 제외하면 특별하게 나갈 일이 없어졌다. 장점일까, 단점일까? 모르겠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  장점이지만, 바깥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보지 않는  확실하게 단점이라 생각한다. 기초대사량도 줄었다. 이전보다 적게 먹는데, 오히려 살이 붙는다. 그리고  하나, 외출의 빈도 감소와 함께 줄어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옷에 대한 관심이다. 


회사로 출근하던 시절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뭘 입을까부터 고민했다. 잔뜩 걸려 있는 옷을 보며 입을 게 없다고 늘 한숨지었다. 전날 입은 옷이 그나마 맘에 들지만, 차마 같은 옷을 입고 회사에 갈 수는 없었다. 깔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옷을 사고 입을 옷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지금은 무얼 입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옷걸이에 걸린 아무 옷이나 집어 들어 밖으로 나간다. 내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누구와 대화를 나눌 일도 없다. 가장 편한 검정 패딩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래서, 옷을 사지 않는다.  필요도 없다. 특별히 외출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옷에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자신의 내면을 표면화시킨 것이다. 날씬해 보이고 싶어 검은색을 입고, 활동하기 편해 트레이닝 복을 입는다. 몸매를 자랑하려고  붙는 옷을 입고, 남들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하고 밝은 옷을 입는다. 옷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부각하는데 훌륭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옷을 사는 것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한다. 자신과 어울리는 색과 (fit) 찾다 보면, 하루를 꼬박 쏟아도 겨우 한두  건질 뿐이다. 아침에 입을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 상의와 하의가 어울리는지, 양말 색은 적절한지, 평범하지는 않은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회사에 지각하기 일쑤다.


검은색 터틀넥, 리바이스 청바지, 회색의 뉴발란스 운동화. 스티브 잡스가 평생 입었던 의상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잇세이 미야케에게 주문했던  백의 검은색 터틀넥만 입었다. 페이스북(현재는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반팔 회색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또한, 피카소의 줄무늬 셔츠, 아인슈타인의 회색 정장, 가깝게는 유튜버 신사임당의 검은색 의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몇몇은   가지 스타일만 고집했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를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들었다. 어떤 옷을 입냐 보다는, 어떤 일을 하는지가 중요했다.




음식을 고르는 것도 비슷하다. 선택의 연속이다. 음식을 해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스스로 골라야 한다.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도 다르지 않다. 음식을 생각하고 맛을 떠올리고 가격을 생각해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와 같이 먹으면 더욱 선택하기 어렵다. 각자 음식의 대한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백반을 먹고 싶지만, 누군가는 중식을, 또 다른 누군가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오늘 뭐 먹을래?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면 참으로 불편하다. 먹고 싶은 게 없는데 뭐라도 말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 그럼에도 상대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아무거나 둘러댄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무난한 음식을 선택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사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재택근무는 이런 불필요한 선택에서 나를 해방해주었다.  점심은 오로지 샐러드다. 같은 가게에서  가지 메뉴를 돌아가며 주문한다. 오늘은 닭가슴살 샐러드, 내일은 연어 샐러드,  그다음 날은 리코타 치즈 샐러드 같은 식이다. 질릴 만도 한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충분히 맛있다. 오히려 매일매일 먹을 것을 결정하는 것이 내게는 불편한 일이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몸을 지키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맞춰 살기에는 선택에 따른 피로감을 무시하기 어렵다. 옷은 몸에 잘 맞으면 그만이고, 음식은 건강하면 그만이다. 맛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아마, 아닌 사람이 더 많겠지만).


스스로 몰입하는 인생을 살길 원한다면, 생활은 단순해야 한다.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하고,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이   보이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선별할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이라곤
 잔의 차와 조명 그리고 음악뿐.
내가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은
집중과 단순함이다.

-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Apple) 공동창 -


이참에 나도, 검은색 옷만 입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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